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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 인생의 기근을 만난 이들에게

문학n천국 2023. 7. 14. 15:08

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성경을 벤치마킹(bench marking) 하라 >

[4] 인생의 기근(흉년)을 만난 이들에게

삼국시대에 신라(新羅)는 B.C.57년~A.D.935년까지 992년간 우리 나라의 고대 역사를 장식한 천년왕국(千年王國)이었다. 신라에 대한 기록은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상세하게 남아 있다. 특히 <삼국사기>에는 가뭄과 홍수, 역질, 메뚜기떼 습격, 지진 등 기상재해와 관련한 기록이 많이 있다.

특히 신라의 쇠퇴기에 거듭된 가뭄(drought)으로 민란(民亂)이 발생하고 또한 후백제와 후고구려(고려)의 압박이 천년 사직을 내려놓는 배경이 되었다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물론 정치적인 요인도 부인할 수 없다. 신라가 멸망한 이유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많은 이유를 제시한다. 왕조 후반기의 골품제도의 문란, 귀족과 사찰의 대토지 경영과 이로 인한 생산력 감소, 농민의 몰락, 인적 자원의 고갈, 불교의 타락 등이다.

신라가 멸망할 무렵 도성(道成)이었던 경주(慶州)의 인구만 70~80만 명이었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가뭄에 오랫동안 노출되다 보니 국력은 약해지고, 결국엔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太祖 王建)에게 나라를 바침으로 신라는 결국 패망하고 만다. 이렇듯 기근은 나라의 존폐(存廢)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재해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성군(聖君) 다윗왕 시대에도 삼 년 동안 극심한 기근이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삼하21:1).

성경은 비를 내리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한다.

(신명기 11:13-15)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또한 반대로 하늘을 닫아서 사람들을 굶주리게도 하시고, 또 다시 고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한다.

(역대하7:12-14)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성경에 기록된 기근(饑饉) 경험은 10회 정도이고 영적인 기근까지 합하면 13회 정도 되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한다(창12:10, 창26:1, 창41:54, 룻1:1, 삼하21:1, 왕상18:2, 왕하6:25, 왕하8:1, 왕하25:3, 암8:11, 행11:28, 계6:6, 계18:8).

기근에 대한 성경의 첫 기록은 '복의 근원, 축복의 사람' 아브라함 때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으니 뭘 해도 잘 되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아브라함이 감당키 어려운 기근을 그가 살고 있는 땅에 보내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함에도 기근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애굽(이집트)으로 내려간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혼란스러워 하거나 불평하지는 않았다.

(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라함은 애굽에 들어갈 때 아내 사라에게 자신을 남편이 아닌 오라버니로 호칭하게 한다. 사라가 너무 아름다워서 애굽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 것으로 염려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는 팔십 세 전 후였을 테고 사라는 칠십 세 전 후였을 텐데 이런 고민을 했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아마도 사라는 중년이 지난 여인임에도 미스 유니버스(Miss Universe) 급 미모였던 것 같다. 심지어 애굽의 왕조차도 사라의 눈부신 미모에 반해 아브라함에게 사례(謝禮)를 했다. 아브라함의 재물이 크게 늘어난 원인이 되었다.

(창세기 12:12-16)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하지만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아브라함은 왕에게 빼앗겼던 아내 사라를 되찾아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 애굽에서의 일이 아브라함에게는 뼈아픈 기억이다. 아내를 빼앗기는 과정에 아내를 지켜내기 위한 어떤 노력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아내와 많은 하인들의 주인으로서 체면이 박살났고 말았다. 요즘 말로 아브라함은 이 일로 '쪼잔남', 곧 쪼잔한 남자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애굽왕이 너그러운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창세기 12:17,19)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당시 아브라함은 기근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 말로 '쪽팔림(embarrassing)'때문에 마음이 괴로웠을 것이다. 다른 남자들이 아브라함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자 망신 혼자 다 시킨다' 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중대한 실수를 한번으로 끝내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고 만다. 가나안 땅에 올라 갔을 때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또 저항 한번 못 해보고 아내를 빼앗기고 말았다.

(창20:2-3)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이때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아내를 돌려받게 하셨다. 이렇게 두 번이나 쪼잔하게 부인을 빼앗겼으니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미안하다며 무릎꿇고 사죄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리했으리라 믿고 싶다. 아브라함은 기근을 통해 자기 사람 지키는 법을 배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까지도 지켜주시는 분임을 경험했을 것이다.

기근은 결코 환영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만약 우리 삶이 그런 환경에 처한다면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한다. 기근은 우리에게 고통을 전달하는게 목적이 아니다. 기근은 누구에게 집중해야 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이정표(Milestone)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런 사건들을 통해 아브라함의 실수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임신하지 못하자 86세에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는 실수를 또 반복하고 만다.

(창세기 16: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여종 하갈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씨를 잉태한 줄 알고 여주인 사라를 멸시한다. 자신의 신분이 상승한 줄로 착각한 모양이다. 결국 또 상처받는 것은 아내 사라였다. 사라는 정말 이래저래 상처투성이 가슴이 아니었을까?  사라는 훗날 90세에 마침내 아들 이삭을 낳고서야 비로소 웃게 된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 진정한 행복의 시작이었다.

(창세기 21:5-6)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아브라함이 겪은 기근 때의 일은 양식의 부족함을 넘어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산산조각난 아픈 경험이었고, 사라가 겪은 기근 때의 일도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철저하게 무너져 내리는 아픈 경험이었다. 사라는 두 번이나 다른 남자에게 팔려 갔었고, 여종에게서도 심한 모욕을 당했었다.

이렇게 기근은 반갑지 않은 인생의 불청객인데 누구나 예외없이 이런 기근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두려워 할 것은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는 한 기근은 해소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한 절망에서 반드시 벗어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 107:19-20)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시편 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믿음을 타고 났기 때문이 아니라고 본다. 자신의 연약함을 수정해 가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순종이 아브라함의 삶을 세우는 기둥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브라함은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훗날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순종한다. 자식을 죽이라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을 아브라함은 해낸다. 이러한 순종이 축복의 원인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히브리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