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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 인생의 기근을 만난 이들에게 2

문학n천국 2023. 7. 19. 18:26

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성경을 벤치마킹(bench marking) 하라 >

[5] 인생의 기근을 만난 이들에게 - 2

요즘 연일 퍼붓는 장마 폭우로 도로가 찢기고, 지하차도는 잠기고, 열차도 일부 멈추고, 공항은 운항 취소가 잇따르고, 산사태로 마을이 진흙 범벅이 되고, 안타깝게 유명(幽明)을 달리한 분들도 있다.

가만히 보니 우리는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이고, 반대로 비가 오지 않아도 걱정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은 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사자성어가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너무 지나친 것은 모자람과 같다'는 뜻이다. 영어로 '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 이다.

배부른 것이 배고픈 것 보다는 좋지만 배가 너무 부르면 병(病)이 찾아 온다. 소금이 몸을 위한 필수 영양소이지만 지나치면 고혈압을 부르고 그로 인해 뇌졸중, 심근경색, 심부전, 신장질환의 발병률을 높인다. 또한 사랑이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상상이 지나치면 망상이 된다. 그런고로 때에 알맞게, 상황에 알맞게 내 삶에 적절하게 공급되어지는 것이 참 복(福)이라고 생각한다.

비가 적당히 오면 온갖 식물이 푸르른 녹색과 열매를 선물한다. 하지만 비가 노아의 홍수처럼 많이 오면 다 죽는다. 멸망한다. 인간의 지혜로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되고 찾아오고 만다. 그래서 적당한 흐름이 우리 삶을 더 건강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물도 공기도 인간관계도 적절히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는 이들이 겪는 증상을 보통 대인기피증(social phobia)이나 사회공포증이라 하고 그런 사람을 은둔형 외톨이(shut-in)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땅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매우 중요하다. 이스라엘에서 이른 비(Autumn rain)는 10~11월 쯤 가을에 내리는 첫 비를 가리킨다. 이른 비를 시작으로 우기(雨期)가 시작된다. 여름철 건기(乾期)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메말라 있었기 때문에, 이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할 수가 없다. 농부는 농사 지을 준비를 해 놓고 메마른 땅을 적실 이른 비를 간절히 기다린다.

그리고 이른 비가 내리기 시작해 2~3주가 지나면 들판은 푸른 초장으로 변한다. 농부들은 이때 밭을 갈고 파종한다. 이른 비가 적당한 시기에 내려야 제 때 씨를 뿌릴 수 있는 것이다.

늦은 비(Spring rain)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3~4월 경에 내리는 비다. 흔히 봄비라고 부르는 단비이다. 늦은 비는 겨울 동안 자란 농작물 수확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단비가 된다. 이스라엘은 우리와는 파종 시기와 수확 시기가 반대이기 때문에 가을비가 이른 비가 되고 봄비가 늦은 비가 된다.

(신명기 11:13-15)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그러나 어느 한 쪽으로 너무 극단(極端)으로 치우치면 문제가 된다. 비가 전혀 오지 않아서 흙먼지가 이리저리 날리는 것도 문제이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모든 것이 잠겨 버리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에게 적당한 때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은혜를 '때를 따라 돕는 은혜' 라고 부른다. 이 은혜 때문에 오늘도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슬마저도 내리지 않았다. 마치 빨래가 건조기에서 바짝 마르듯이 온 땅이 메말라 갈라졌다. 이렇게 된 까닭은 엘리야가 가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열왕기상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가뭄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아합왕이 직접 물을 찾아 땅을 두루 다니기까지 했다. 왕이 직접 물 웅덩이나 샘을 찾아다니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를 넘어 있을 수 없는 현실이다. 그만큼 절박했다는 반증이다. 아합왕은 가만히 앉아서 신하들의 보고를 기다릴 수 만은 없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되자 왕이 직접 물을 찾아 나선 것이다. 어느 누구도 평안하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열왕기상18:5-6)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그러나 물을 찾아 나선다고 해결될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물 근원까지 모두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아합왕은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며 이(齒)를 갈았다. 선지자의 입을 틀어 막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것이 엘리야의 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정치가 종교를 압도하기 마련인데 이 상황은 종교가 정치를 압도하는 상황이다. 하나님이 막으시면 아무리 이스라엘 왕이라 할지라도 물 한방울 얻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마트에 가면 언제든지 생수를 큰 묶음으로 살 수 있으니 이런 어려운 상황을 짐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입이 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을 모를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괴로운 시간은 삼 년 이상 계속되었다.

(야고보서 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性情,disposition)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그리고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요단강 앞 그릿시냇가와 사르밧 과부에게로 보내 가뭄의 때를 지나게 하셨다. 그릿시냇가에서는 까마귀들을 통해 아침과 저녁으로 도시락을 배달해 주셨다. 마치 군사작전을 치르듯이 까마귀들이 일사분란(一絲不亂)하게 하나님의 종에게 도시락을 배달했다.

(열왕기상17:3-7)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열왕기상17: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리고 시냇물이 마르자 사르밧 과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게 하셨다. 사실 이 과부는 마지막 한 끼를 아들과 함께 떡 한 조각 만들어 먹고 죽으려 했었다. 그게 음식물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어린 자식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어미의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엄연한(undeniably) 현실이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동경하게 되는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내 어릴 적 고향 땅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참 가난했다. 그냥 가난한 게 아니라 찢어지게 가난했다. 정부에서 매월 지급해 주는 밀가루 20kg 한 포대로 한 달 동안 죽을 쑤어서 연명하던 이들이 많았다. 물론 명절 때는 쌀밥 한 그릇 정도는 먹었다. 요즘 아이들은 과거의 현실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고 '그럼 쌀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지?' 라고 하지만 라면도 귀한 시절이었다. 정말 가난은 나랏님도 어찌 못하는 것이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말,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엘리야를 공궤한다. 그랬더니 삼 년 동안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기적이다. 가장 막막했던 자리에서 매일 매일 기적이 펼쳐진 것이다.

(열왕기상17:13-16)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믿음은 우리에게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양식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수십 년을 입어도 늘 새 옷인 것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 생활에서 옷을 짜지 않았다. 옷이 닳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갑옷도 녹슬고 닳아지는데 섬유 옷이 처음 상태로 4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깨우는 하나님의 기적이었다.

또한 40년 광야 길을 걸었음에도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고 말씀한다. 백성들의 발바닥이 곰 발바닥도 아닌데 어찌된 일인가? 이 또한 놀라운 기적이다. 어떤 학자들은 40년 동안 새 옷과 새 신발을 늘 짜서 입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백 만 명 쯤 되는 사람들 모두가 늘 새 옷과 새 신발을 신기에는 섬유와 가죽 공급이 쉽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신명기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Your clothes did not wear out and your feet did not swell during these forty years'

엘리야 때 아합왕과 백성들에게 내린 가뭄과 기근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죄의 문제이다. 특별히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숭배 죄이다. 아합왕과 온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 그들은 이것을 지혜라고 여겼을지 모르지만 자신과 가정과 나라 위에 저주를 불러오는 악한 죄였다.

기근 중에도 살 길은 있다. 홍수 가운데서도 살 길은 있다. 그 길은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르밧 과부처럼 가난한 사람도 기근을 극복했다. 우리도 기근의 때를 극복할 수 있다. 요셉의 때에 온 땅은 기근에 굶주렸지만 요셉이 총리로서 다스리는 애굽 땅엔 식량 창고가 가득했다. 사실 애굽 땅에도 기근이 찾아왔지만 기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는 자에게는 이런 기적이 상식처럼 되게 해 주신다. 우리는 기적을 일상처럼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