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성경을 벤치마킹(bench marking) 하라 >
[6]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유대인들이 만든 신앙교육서이자 성경해석서인 미드라쉬(מדרש , Midrash)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다윗왕이 최고의 보석 세공사를 불러 명령을 내린다. '나를 위하여 반지 하나를 만들라. 거기에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그런데 그 글귀는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나를 이끌어 낼 수도 있어야 한다'
보석 세공사는 왕의 명령대로 매우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적당한 글귀(wording)가 생각나지 않아 고민을 계속했다. ‘어떻게 한 문장으로 왕이 승리했을 때도, 그리고 왕이 매우 고통스러울 때도 왕의 마음을 붙들어 줄 수 있을까?’
보석 세공사는 고민하다가 솔로몬 왕자를 찾아간다. 솔로몬의 지혜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석 세공사의 고민을 들은 왕자 솔로몬은 이렇게 지시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이 글귀는 왕의 승리의 순간에 자만심을 가라앉게 할 것이고, 왕이 낙심 중에 이 글귀를 보게 되면 곧 용기를 얻을 것이다' 라고 덧붙였다.
내 자신도 이 표현을 자주 되새기는데(ruminate) 묵상하면 할수록 이 글은 사람을 겸손케 하는 힘이 있다.
드라마 속이나 우리 주변에서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다가 혼절(昏絕)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혼절(pass out)할까 생각한다. 그러다가 세월이 조금 흐른 뒤에 보면 그렇게 혼절했던 사람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너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약간의 괴리감(gap)이 든다. 역시 인간은 망각(忘卻)의 존재가 맞는 듯하다. 하지만 내 안에서 처리되지 못한 감정들은 차라리 이렇게 잊어버리는 게 낫다고도 생각된다.
구약성경의 인물 가운데 상처로 단련된 사람이 있다. 요셉(Joseph)이다. 야곱(Jacob)의 열 두 아들 가운데 열 한번 째 아들이다. 야곱이 가장 사랑해서 유일하게 채색옷, 곧 색동옷을 지어 입혔던 아들이다. 채색옷은 단순히 옷감과 디자인이 다르다는 것을 넘어 후계자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성서학자들은 말한다.
채색옷은 열 명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게 된 매우 합리적인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요셉을 죽이려 들었던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감히 아버지의 다음 권력을 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요셉의 잘못이 아니었다. 채색옷은 아버지 야곱의 아이디어였고 훗날 요셉을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간 잘못된 배려였다.
또한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꿈을 꾸고 형들에게 자랑한다. 그 꿈의 요지는 요셉이 아버지와 형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는 꿈이었다. 이것이 요셉을 궁지로 내몬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창세기 37:6-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결국 요셉은 형들에게 붙잡혀 은 이십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다. 아버지는 모르는 형들만의 범죄였다. 요셉의 인생은 한순간에 곤두박질했다(plummet). 요셉의 나이 열 일곱이었다. 그러나 이방 땅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크게 절망하거나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지는 않다. 요셉은 빠르게 적응했고 주인에게 인정받을 만큼 충성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분하고 억울하여 이성을 잃고 막가파(motiveless)처럼 행동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형들은 요셉이 들판에서 짐승의 밥이 되었다고 아버지께 알렸다. 이렇게 형제간 인신매매 사건 이후 요셉은 22년 동안 가족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22년 동안 어느 누구도 요셉의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실 모두가 공범이기 때문이다. 오직 아버지 야곱만 홀로 슬픔을 감내한 세월이었다.
요셉은 애굽왕의 친위대장인 보디발(Potiqhar)에게 팔려간다. 보디발은 히브리 노예 소년을 눈여겨 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그를 가정총무로 삼는다. 노예에게 파격적인 기회를 준 것이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집안의 모든 일을 맡기고 간섭하지 않았다. 온전히 신임했다는 뜻이다.
애굽에서 정착해 갈 무렵 요셉의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 또 발생한다. 보디발의 아내 곧 여주인이 요셉을 성적(性的)으로 유혹하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노골적으로 동침(同寢)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오히려 여주인의 성욕에 반응함으로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다. 여주인에게 쾌락을 선물하고 많은 혜택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보디발의 아내는 노예에게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요셉을 죽여서 자신의 치부(恥部)를 감추려 한다. 여주인은 남편에게 요셉이 자기를 강간하려 했다며 죄를 뒤집어 씌운다. 화가 난 보디발은 요셉을 자기 집에 있는 감옥에 가둔다. 보디발의 집에 감옥이 있는 것은 왕의 친위대장으로 정치범들을 그곳에 가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에 가두는 조치 외에 어떤 형벌도 내리지 않는다. 아마도 보디발은 요셉을 보호하려 한 것 같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자기 아내로부터 요셉을 건져냈다고 보여진다. 이 얼마나 대단한 배려이며 또한 신뢰인가? 그리고 감옥의 간수장은 요셉에게 감옥의 사무를 맡긴다.
(창세기 39:20-22)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요셉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이젠 노예로도 부족해 성폭행 미수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감옥에서 결정적인 인연을 만나게 된다. 바로왕(Pharaoh)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죄를 짓고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요셉은 이들을 섬기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이들의 꿈을 해석해 준다. 그 꿈은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된다는 해석이었다. 그리고 요셉의 해석처럼 되고 만다.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된다.
2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바로왕이 꿈 때문에 번민할 때 술 맡은 관원장은 감옥에서 만난 요셉을 기억하고 왕에게 요셉을 천거하게 된다. 그리고 요셉은 왕에게 불려와 왕의 꿈을 해석해 준다. 그 꿈의 해석은 애굽 땅에 칠 년의 풍년과 칠 년의 극심한 흉년이 찾아온다는 꿈이었다.
(창세기 41:26, 29~30)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바로왕은 요셉에게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고 그를 애굽의 총리로 임명한다. 이방인 죄수에서 한순간에 총리가 된 것이다. 이때 요셉의 나이 삼십 세였다. 열 일곱에 노예로 팔려와서 십 삼년 만에 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다.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최고 권력자가 된 것이다.
(창세기 41:41-44)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요셉이 서른 살에 총리가 되었으나 몇 년 동안 총리직에 있었는지 성경은 말씀하지 않는다. 다만 백 십세에 죽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창50:26). 아마도 추측컨대 7년의 대풍년과 7년의 대흉년을 겪은 사람들 시대에는 요셉에게 권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성경의 기록에만 의존하면 총리 9년차에 아버지와 가족들이 애굽에 내려왔고 그 이후 야곱이 십칠 년을 살다가 죽었으니 최소 26년 이상 실질적으로 애굽의 권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지금과는 다른 왕조시대였기에 26년 보다는 훨씬 긴 세월 총리직에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창세기 41: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창세기 50:7-9)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우리는 성공한 요셉만 주목하려 한다. 그의 영적인 능력과 정치력을 분석하려 한다. 하지만 요셉은 단 한번도 스스로 미래를 결정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급류에 휩쓸려 가는 듯한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도우셔서 보디발의 집으로, 감옥으로, 왕궁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훗날 모세도 본래는 히브리 노예민족의 자손이지만 애굽 공주의 양자로 들어가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출애굽 지도자로서의 스펙(spec)을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 자격으로 쌓게 하셨다. 만약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모세의 장래희망은 '출애굽 리더'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오늘 우리는 어려워도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결론에 도달한 인생이 아니라 해피엔딩(happy ending)으로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아픔도, 눈물도, 상처도 다 지나갈 것이다. 오늘을 견디어야 한다. 믿음으로 우리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이다. 'This too shall pass'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