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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 153 의 기적

문학n천국 2023. 9. 1. 14:29

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성경을 벤치마킹(bench marking) 하라 >

[11] 153의 기적

세계적인 명품이나 유명 브랜드라 할지라도 손해를 감수하며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런데 문구(文具) 업체 가운데 모나미(mon ami)는 오랫동안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손해를 보면서 판매했다. 물가상승과 인건비, 생산원가를 감안하면 회사는 이미 부도가 났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모나미는 날이 갈수록 성장했다. 지금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모나미는 후진국에서는 우상처럼 선호하는 제품이 되었고, 선진국에서도 고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이 모나미는 1963년 5월 광신화학으로 출발한 기업으로 창업주는 신실한 신앙인이었던 故 송삼석 회장(정동제일교회 장로)이다. 그는 일찍이 여러 번 창업했으나 거듭하여 실패를 경험했다. 그렇지만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복음 21장을 읽고 묵상할 기회가 있었다.

송 회장은 요한복음 21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곧 153이라는 숫자이다. 그래서 이 숫자를 자신의 회사에서 생산하는 모나미 볼펜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삶을 예수님께 드리기로 결단했다.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판매 실적이 부진했던 모나미 볼펜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그 후로도 50여 년 동안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뛰어난 문구 제품으로 자리매김하게(be positioned as) 되었다.

성경에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사람들에게 아래의 순서를 따라 열 번 나타나 보이셨다. 물론 성경의 기록에만 의존했을 때 열 번이다. 아마 그 이상 사람들에게 보이셨을 수도 있다.

1.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에게 (마 28:9)/ 2. 베드로에게 (눅 24:34,고전15:5) / 3. 글로바와 다른 제자에게 (눅 24:13-35). / 4. 도마가 없을때 제자들에게 (막 16:14,눅24:36,요20:19) / 5. 도마가 함께 열한 제자에게 (요20:26) / 6. 디베랴 바다에서 일곱 제자에게 (요21:1-14). / 7. 갈릴리 산 위에서 열 한 제자에게 (마 28:16) / 8. 500여 형제들에게 (고전 15:6) / 9. 주의 형제 야고보에게 (고전 15:7) / 10. 예루살렘 부근에서 열 한 제자에게(막 16:19,눅24:50,행1:3-12,고전15:7).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분명 큰 기쁨과 용기를 주었다. 하지만 제자들은 머지않아 혼란에 휩싸였다. 예수님께서 계속하여 육신으로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야 했다. 아마 제자들은 허탈하고 착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3년 전 생업(生業)을 내던지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로 돌아가시면 그들은 방향을 잃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들의 삶의 표지판(signpost)이었는데 이것이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이다. 갑자기 선생이 사라지고 학생 11명만 덩그러니(by itself) 남겨진 것이다. 이것은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그림이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선택을 해야 했다. 제자들은 가난했다. 예수님이 자취를 감추신 상황에서 재정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을 것이다. 수제자 베드로(Peter)는 재빨리 이전 생업으로의 복귀를 결정한다. 3년 만에 어부(fisherman)로의 복귀이다. 그리고 베드로의 결단에 동요되어 다른 여섯 명의 제자들도 어부로 복귀한다. 이렇게 일곱 제자는 다함께 밤새도록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을 던진다. 협업(協業)이다. 하지만 그 밤에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아무리 운(luck)이 없다 해도 밤이 새도록 한 마리도 못잡은 건 그들의 자존심을 다치게 했을 것이다. 바다에서 잔 뼈가 굵은 뱃사람들인데 말이다.

(요한복음 21:2-3)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갈릴리 바다는 남북으로 길이가 21km, 동서로 폭이 11km이고, 호수의 둘레는 53km이다. 해수면보다 209m 아래에 위치해 있고 세계에서 가장 낮은 호수이다. 평균 깊이는 약 26m이고 가장 깊은 곳은 43m이다. 보통은 갈릴리 바다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호수이다. 그리고 게네사렛 호수(눅5:1), 디베랴 바다(요21:1)로도 불린다. 갈릴리 호수를 둘러싼 어촌 마을에는 가버나움과 벳새다가 있다. 이 마을들은 예수님이 가장 많은 일을 행하신 복음의 현장이었다.

이 갈릴리 바다에서 일곱 제자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원인에 대해 성경은 답하지 않는다. 3년 만에 그물을 던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시기 위해 물고기들을 모두 숨기셨을까? 제자들은 밤새도록 넓은 바다에서 물고기들과 숨바꼭질(hide-and-seek)을 했다. 어쩌면 철저히 계산된 실패였는지도 모른다. 고기잡이 전문가 일곱 명이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은 다 찢어져 너덜너덜한 그물을 던졌을 때나 가능한 시나리오(scenario)가 아닐까?

그런데 새벽녘이 되어 예수님이 바닷가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할 만큼 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랬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큰 물고기가 153 마리나 잡혔다. 밤새 제자들의 진땀을 빼게 하고 침묵했던 바다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물고기를 순식간에 내어놓은 것이다. 대자연(大自然)이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한 것이다. 지난 밤 날이 새도록 헛수고를 하게 했던 그 바다가 큰 물고기들을 신속히 그물에 들여 보낸 것이다.

(요한복음 21:4-6)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요한복음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큰 물고기 백 쉰 세 마리가 잡혔으나 그물(net)이 찢어지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이 말은 그물이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찢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그 물고기들은 그물에 의해 바다 속에서 끌려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 안에 집합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물고기들을 집합시킬(gather) 수도, 해산시킬(disband) 수도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은 물고기들의 모든 무게를 넉넉히 감당해냈다.

지난 밤 이 많은 물고기들은 다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경상도 사투리로 이 물고기들은 어디에 '짱박혀(cooped up)' 있었을까? 일곱 명의 제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이 '우뢰의 아들'이라고 별명을 지어준 야고보와 요한도 있었다. 이 형제들은 성격이 불같이 급한 다혈질의 사람들이었다. 밤새 허탕을 쳤으니(go to waste) 아마 머리 뚜껑이 열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씩씩대고 짜증을 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이와같지 않을까? 내 뜻대로 되는 것은 몆 안된다. 오히려 쉬워 보이는 일들 때문에 우리 인생이 피곤해지곤 한다.

(마가복음 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중요한 것은 그 물고기들이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지시하신 그물 안에 모여 들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바다에 있던 물고기 가운데 튼실한(solid) 것들이 지목되어 그물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침 물고기 153 마리 사건은 방향을 잃은 제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을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바다가 가로막았다. 무릎 깊이의 시냇가라면 바지를 걷어 올리고 건너면 될 것이다. 하지만 홍해 바다의 깊이는 학자들에 따라 이견(異見)이 있지만 수백 m에서 수 k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아무튼 그냥 건널 수 없는 바다이다. 홍해 바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춤하며 웅성거릴 때 애굽 군대가 추격해 왔다. 지금 애굽 군대는 바람 쐬러 온 게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죽여 광야에 묻을 생각이다.

(출애굽기 14:6-7)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중무장(重武裝)한 애굽 군대를 바라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세를 원망한다. 당신의 잘못된 판단때문에 모두 죽게 되었다는 원망이다. 하지만 모세는 항변하지(plead) 않았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해 나간다.

(출애굽기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모세는 동요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를 걸어서 건너게 하신다는 선언이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황당한 변명이다. 그러나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가리키자 큰 동풍이 불면서 바다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몇 시간 후 정말 바닷길이 개통되었다. 마른 땅의 비포장도로가 열린 것이다.

(출애굽기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백성들은 찬송하며 바다를 건넜다. 거대한 수족관(aquarium)을 관광하는 듯 했을 것이다. 아마도 환상적이었을 것이다. 돌아가신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André Kim) 선생님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뽠따쓰띡(fantastic)이예요!!'

(출애굽기 14: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홍해를 건넜다. 홍해길은 어제까지는 없던 길이었다. 오늘 만들어지고 오늘 통과한 길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이고 기적이다.

백 쉰 세마리의 큰 물고기는 본래 제자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밤새 찾았지만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바닷가에 오셔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신 후 물고기들은  곧 준비되었다. 오늘 우리도 현실 앞에 당당해야 하겠다. 주눅이 들어선 안된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곧 준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주님께는 결코 문제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153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