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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 의미 찾기

문학n천국 2023. 10. 22. 11:58

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성경을 벤치마킹(bench marking) 하라 >

[16] 의미 찾기 (finding meaning : logotherapy)

영어 명언 가운데 "운명이 당신에게 신(sour)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기를 노력하라"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는 말이 있다. 레몬이 시다고 버리지 말고 오히려 레모네이드 쥬스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역경 가운데서도 긍정(affirmation)을 잃지 말라는 의미이다.

귀가 멀었던 베토벤, 눈과 귀가 모두 멀었던 헬렌 켈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도스토예프스키, 불행한 결혼생활에 좌절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차이코프스키는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이다.

베토벤(Beethoven)의 청력(hearing) 이상은 그를 깊은 절망에 빠지게 했다. 하지만 오히려 베토벤의 음악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했다. 왼쪽 귀부터 그리고 높은 음(音)부터 듣지 못하다가 결국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은 집요할 정도로 리듬(rhythm)에 집착했다고 한다. 또한 귀 대신 눈으로 작곡했다 할 정도로 악보 위에는 기하학(geometry)에 가까운 음표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이런 베토벤에 대해 로빈 월리스(Robin Wallace)는 '베토벤은 청각 장애를 이겨내지 않았다. 끌어안고 헤쳐나갔다' 고 평가했다.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장애인이 아닌 정상아로 출생했다. 하지만 19개월 때 심한 열병을 앓고 난 뒤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었다. 당시 의사들은 헬렌 켈러에게 뇌염 진단을 내렸다. 헬렌 켈러는 글을 익힌 뒤 수필을 썼다. 켈러가 직접 타자기로 쓴 <내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이라는 글은 세계적인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에서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음은 <내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의 일부이다.
첫째 날,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놓고 그동안 목소리로만 듣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겠다.
둘째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감동적인 순간을 보고 싶다.
셋째 날, 다시 한 번 해가 뜨는 광경을 바라보겠다. 그 다음에는 거리로 나가 사람들이 오가는 광경을 바라보겠다.

28세에 사형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가 사형선고를 받은 이유는 당시 러시아의 정치 체제를 비판하는 모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에 불안해진 니콜라이 1세 황제는 이들을 모두 잡아들였고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 집행일, 그 남자에게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는 5분을 다음과 같이 쓰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작별 기도하는 데 2분,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른 사형수들에게 작별하는 데 2분, 그리고 눈 앞의 자연과 지금까지 서 있게 해 준 이 땅에 감사하는 데 1분이었다. 그에게 기도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때 기적적으로 사형 집행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그는 이 5분을 평생 간직하며 살았고, 이후 러시아 문학계에 큰 이름을 남기게 된다. 그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y)이다. 구사일생한 그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대작(大作)을 남기게 된다.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는 러시아 음악을 세계에 알린 작곡가이다. 그는 '발레곡의 대가' 라 불린다. 그는 러시아에서 가장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작곡가였다.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이로 톨스토이(Tolstoy)를 꼽는다면 러시아 음악을 대표하는 이는 단연 차이코프스키라 할 수 있다. 그의 발레곡에는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등이 있다. 하지만 그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고, 알려진 바로는 그는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콜레라(Vibrio cholerae)로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비소(Arsenic)라는 독극물을 먹고 자살했다고 한다. 성공한 그에게도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던(be tough) 것 같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고난이라는 한 단어로 그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욥(Job)이다. 본래 욥은 고난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회적 지위는 국가 지도자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아주 탄탄한 인생의 기반을 갖춘 사람이었다. 요즘 말로 '다 가진 남자(A man who has it all)' 가 욥이었다.

(욥기 29:8-13)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욥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작은 허물을 찾기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구약성경이 세 명의 의인을 꼽을 때 그 가운데 속한 사람이 욥이었다.

(에스겔14:13-14) '인자야 가령 어떤 나라가 불법을 행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런데 어느날 욥의 인생이 발칵 뒤집어지고 말았다. 마치 쓰나미(Tsunami)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그에게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었다. 짐승도 많아서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 가축의 수만 11,500 마리였다. 아마 짐작컨대 축사(cattle shed) 크기가 잠실야구장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의 전 재산과 모든 자녀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것이다.

(욥기 1:2-3)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욥이 죄가 많은 사람이었다면 하나님이 심판하셨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욥은 아니었다. 욥은 무결점(無缺點)의 삶을 살았다. 심지어 자녀들이 생일 잔치를 한 다음 날엔 자녀들이 은연중에 범죄했을까봐 죄 용서를 구하는 번제를 드리던 사람이었다. 신앙적으로 정말 주의깊었던 사람이 욥이었다.

(욥기 1: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도무지 빈 틈이 없던 욥이 갑자기 망했다. 모든 것을 잃었다. 사전에 어떤 징후도 없었다. 만약 재앙을 예상했더라면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욥을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계획이 흔들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뜻밖의 상황에서 욥의 삶은 철저히 무너졌다. 그리고 욥의 삶은 오랫동안 무너져 있었다.

(욥기 1:13-19)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욥의 자녀들과 가축들을 죽게 만든 것은 스바 사람들과 갈대아 사람들과 하늘에서 내린 불과 태풍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사탄이 욥의 가정에 핵폭탄 같은 저주를 퍼부었던 것이다. 가축들은 들판에서, 자녀들은 집이 무너져서 한 날 한 시에 모두 죽고 말았다. 이 일을 보고받은 욥은 휘청거리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보통 TV 드라마에서는 뒷목을 잡고 쓰러지곤 한다. 욥의 반응은 놀랍다 못해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어찌 이토록 침착할 수 있을까?

(욥기 1:20-22)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벼락을 맞아도 끄떡없고, 숱한 폭풍우를 꿋꿋이 견뎌낸 아름드리 고목이 사람의 손가락 마디만한 딱정벌레의 공격을 받아 맥없이 쓰러진다. 사자도 함부로 덤비지 못할 만큼 전투력이 강한 코끼리가 꿀벌의 가느다란 침에 속수무책으로 주저앉는다.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열 명의 자녀들을 한 날 한 시에 잃은 사람이 온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찬송한다. 흉내낼 수 없는 신앙이다. 그리고 설상가상 그의 몸에 악성 종기가 나서 고통에 시달린다. 그의 부인은 욥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말한다. 욥의 부인은 말도 안되는 상황 앞에 뚜껑이 열렸던 것 같다. 그래도 욥은 신앙을 지켜낸다.

(욥기 2:6-10)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겠지만 욥이 재앙을 당했을 때 나이가 70세였고, 30년간 그 고난 가운데 있었고, 100세에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셨고, 갑절의 복을 주셨고, 자녀 열 명을 다시 얻게 하셨고, 70세의 갑절인 140년의 삶을 더 살다가 240세에 죽었다고 한다. 물론 성경에서 직접 밝히고 있지 않은 추론이다. 분명한 것은 욥의 고난이 짧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만약 우리에게 이런 재앙이 온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물론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누가 이 말에 설득 당하겠는가? 맞는 말이지만 누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학자들에 의하면 ‘의미 찾기’ 가 이런 슬픔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나치 강제 수용소를 직접 경험했던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보면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고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던 남편에게 만약 아내보다 자신이 먼저 떠났다면 아내가 얼마나 슬퍼했을지 상상해 보라고 하자 금새 슬픔을 털어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욥은 자기가 겪는 고난에 대해 하나님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썼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의미 찾기에 성공한 그는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고난의 의미를 알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욥처럼 내 삶의 기쁨과 슬픔의 '의미 찾기'는 나를 굳게 세우는 도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욥기 42:1-5)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