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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 블랙 미션

문학n천국 2023. 12. 20. 16:05

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성경을 벤치마킹(bench marking) 하라 >

[25] 블랙 미션(Black mission)

동물학자들은 까마귀를 <깃털 달린 유인원(simian)>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지능(智能)이 높다는 뜻이다. 까마귀는 조류(鳥類) 중 가장 큰 뇌(腦)를 가지고 있고 사람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을 가졌다. 또한 언어를 습득(習得)할 수 있고 기억력이 뛰어나며 손과 팔이 없지만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 까마귀는 실제로 갈고리나 나뭇가지를 이용해 멀리 있는 먹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오기도 한다. 사람들이 비속어(卑俗語)로 '새 대가리(Birdbrain)' 라며 남을 비하(卑下)하기도 하는데 까마귀 만큼은 새 대가리에서 예외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까마귀(crow)가 동네 입구에 앉아 있으면 사람이 죽어 나갈 나쁜 징조로 여겼다. 그리고 죽음이 임박한 사람이 있을 때 음식을 차려놓고 무당을 불러 굿(exorcism)을 했는데, 새 중에서 후각이 특히 발달한 까마귀가 멀리서 음식 냄새를 맡고 모여들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인간이 병들거나 죽는 것을 까마귀 탓으로 돌렸다. 까마귀에게 원인을 전가시킨(impute) 것이다. 이렇게 해서 까마귀는 흉조(凶鳥)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이 오해한 것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는 떼까마귀나 까마귀를 흉조(凶鳥)로 여기는 분위기가 아직 남아있지만, 우리에게 이만큼 도움을 주는 새도 흔치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떼까마귀의 배설물은 거름이 되고, 잡식성인 까마귀는 죽은 동물의 사체(死體)를 먹어치워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며 까마귀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길조(吉鳥)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떼까마귀는 날거나 잠을 잘 때 동료를 배려하고 질서를 잘 지킨다며 '까마귀처럼 질서가 없다' 는 뜻으로 쓰이는 사자성어 '오합지졸(烏合之卒)' 은 인문학적 수사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고구려(高句麗)를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는 까마귀를 가리킨다. 이것은 까마귀를 흉조가 아닌 길조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새나 어떤 동물로부터 비롯된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미천한 것들이 인간에게 복(福)이나 화(禍)를 끼친다고 믿는 것은 미신(迷信, superstition)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어학자였던 고(故) 서정범(1926~2009) 교수의 말에 따르면 매년 새해가 시작되면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라며 노래를 부르는데 여기서 '까치 설'은 '작은 설'이라는 뜻을 가진 '아치 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작다는 뜻의 '아치'라는 말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까치'로 변형돼 정착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치'와 '까치'가 지역에 따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까치가 길조라서 까치설이라 이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까치는 길조(吉鳥)이고 까마귀는 흉조(凶鳥)라는 세간(世間)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사용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B.C.876~854) 때의 일이다. 당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예언하던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는데 엘리야이다. 엘리야는 당시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거짓 선지자들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보호하자 이스라엘 땅에 가뭄을 선포한다. 당시에는 백성들도 왕을 따라 바알을 섬겼고, 아합왕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색출해 모두 죽였다. 그리하여 아합은 가장 악한 왕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열왕기상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엘리야는 가뭄을 선포한 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한 곳에 은신(隱身)한다. 요단강 근처 그릿시냇가(The Brook Cherith)이다. 아마 물이 부족한 땅에서 가뭄을 선포해 놓고 거리를 활보(闊步)하다가는 무슨 봉변(逢變)을 당할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말로 가뭄선포는 이적행위(利敵行爲)나 다름없는데 아합왕이 엘리야를 살려둘 가망(可望)이 없었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17:2-3)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엘리야는 그릿시냇가 곧 신변의 위협으로부터 다소 안전한 곳에서 얼마간 지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 그에게 매일 떡과 고기를 배달해 주신다.

(열왕기상 17:5-7)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믿음없는 사람들은 까마귀가 도시락을 배달했다는 것을 허구(虛構, fiction)라고 주장할 것이다. 새가 반복적으로 동일한 장소에 음식을 배달했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두에 설명한대로 까마귀는 조류 가운데 가장 지능이 높은 새이기에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떡과 고기를 누가 요리하고 포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으로 엘리야를 얼마간 먹이셨다. 아마 핏물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보내시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엘리야의 전담 요리사로서 섬겼던 또다른 헌신자 곧 셰프(chef)가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친히 도시락을 준비하셨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의 삶을 돌보아 주시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 놓인 엘리야에게는 까마귀를 협력자로 보내 주셨다. 양식이 떨어져 굶어 죽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과거 시내광야에서 이백 만명 쯤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십 년간 만나(manna)로 먹이신 일은 굶주림으로부터 백성들을 구원하신 사건이었다.

그릿시냇가는 실개천(rillet)이라 할 만큼 폭이 좁은 냇가이다. 또한 건천(乾川)이라고도 하는데 건기 때는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에게로 보내셨다. 그릿시내가 얼마 후 말랐기 때문이다. 사르밧은 이스라엘 땅이 아닌 이방 시돈 땅이었다. 과부는 어린 아들과 함께 버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양식이 거의 동이 나서 마지막 한 끼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과부 가정이었다. 요즘이라면 기초수급자 혜택이 필요한 가정이었다. 과부에게는 엎친데 덮친 격이다. 자기도 죽을만큼 힘든데 선지자까지 자기 집에 얹혀 살기(live off) 위해 왔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17:8-9)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열왕기상 17: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이렇게 과부 외에는 정말 방법이 없었을까? 왜 하필 입에 풀칠도 못하는 과부에게 보내셨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부의 가정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과부에게 민폐를 끼치기 위함이 아니었다. 과부의 가정은 가뭄이 지나기까지 삼년 여 동안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다. 선지자를 대접했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17:13-16)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나는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어 가시는 모습을 본다. 가뭄의 때를 지나가게 하시는 방법을 본다. 엘리야 선지자를 그릿시냇가에서 먹이실 때도, 사르밧 과부 가정을 먹이실 때도 전통적인 방법을 쓰지 않으셨다. 상상조차 못할 방법을 보여주셨다.

우리나라의 퀵서비스(Quick service)가 세계에서 탑(top)이라고 하지만 광야 골짜기까지 배달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우리집 대학생 딸내미가 가끔 밤 늦게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것을 본다. 그러면 다음날 새벽 집 문 앞에 주문한 물건이 도착한다. 주문한지 네 시간여 만에 도착한다. 와~하며 대한민국 만세가 저절로 나온다. 쿠팽(?) 만세가 저절로 나온다.

하나님께서 그릿시냇가에서 엘리야를 먹이실  때도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아침 저녁 식사시간에 맞춰 아직 따끈한 떡과 고기를 퀵서비스로 보내셨을 것이다. 퀵 기사님은 다름아닌 까마귀였다. 나는 이것을 생각하며 엘리야가 매일 경험했던 이 일을 블랙 미션(Black mission)이라고 부르고 싶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 블랙(All black)인 까마귀가 수행한 미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자기 백성들을 도우실 수 있다. 블랙미션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화이트미션, 블루미션, 핑크미션, 그레이미션을 나타내 주실 수 있다. 오늘은 블랙미션을 소개하고 있지만 다른 컬러의 미션도 소개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본다.

내 개인적으로는 20년 전 신학대학원 과정을 공부할 때 서아무개 집사님이라는 분이 등록금과 책값을 졸업때까지 전액 지원해 주셨다. 개인적으로 부탁드리지도 않았는데 선뜻 도와주셨다. 당시 전도사 가정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시고 먼저 나서서 도움을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블랙미션을 통해 엘리야를 도우셨다. 이제 우리에게도 컬러풀(colorful)한 미션으로 은혜를 주실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함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충성되게 하실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