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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 주홍글씨

문학n천국 2024. 1. 26. 11:49

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성경을 벤치마킹(bench marking) 하라 >

[29]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미국의 대문호(大文豪)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1804-1864)이 1850년에 발표한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의 탄생 배경은 이렇다.

어느날 나다니엘 호손은 낙담한 얼굴로 귀가한다. 그는 아내에게 오늘 그의 직장인 세관(稅關)에서 해고(解雇) 당했다고 말한다. 입사 3년만이었다. 그러면서 자기 인생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의 아내 소피아는 오히려 기뻐서 소리친다. 나다니엘 호손이 어리둥절하자 그의 아내는 흥분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드디어 당신은 문학을 할 수 있게 되었쟎아요!'

나다니엘 호손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긴 해. 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우린 뭘 먹고 살지?' 라는 호손의 말에 아내 소피아는 서랍 속에서 큰 액수의 돈을 꺼내 놓는다. 호손이 놀라서 묻는다. '이 많은 돈을 어디서 났어?' 그의 아내 소피아가 말한다. '난 당신이 천재적인 작가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언젠가는 당신이 대작(大作)을 남길 것도 알아요. 그래서 매주일 당신이 가져다 준 생활비에서 조금씩 떼서 모았어요. 이 돈이면 앞으로 1년은 생활할 수 있어요' 라며 남편을 격려한다. 이렇게 해서 미국 문학의 대명사(代名詞)라고 할 수 있는 나다니엘 호손의 작품 <주홍글씨>가 탄생하게 된다. 

<주홍글씨>는 외간(外間) 남자와의 간통으로 자식을 낳게 되는 여인 헤스터(Hester)의 이야기인데, 헤스터는 간통에 대한 벌(罰)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간통(Adultery)의 머리글자 A자를 가슴에 달고 살라는 형을 선고 받는다. 그녀는 펄(pearl)이라는 딸을 낳아 키우며 마을 외진 곳에서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간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존중하며 섬기며 성실히 살아간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삶에 감화되어 그녀의 가슴에 낙인된 A라는 글자는 더이상 간통의 뜻이 아니며 능력이라는 뜻의 'Able' 또는 천사라는 뜻의 'Angel'의 첫 글자라고 선언해 준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헤스터는 모두에게 배척받던 간통녀에서 모두의 응원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다니엘 호손이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을 대작가로 만든 아내 소피아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보통의 여인들이었다면 남편이 직장에서 해고 당하고 들어온 날 밤에 바가지를 긁거나 잔소리 대잔치를 벌였을 것이다. 그러나 소피아는 남편을 격려해 주고 북돋아(encourage) 주었다. 남편을 일으켜 주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1878-1965)는 유태인인데 너무나 책을 좋아한 나머지 '책 없이는 죽을 것 같다' 는 고백을 했었다. 그런 그가 책과 인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책이 아닌 인간을 선택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며칠씩 방 안에 틀어박혀 문을 닫고 책을 읽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것은 내가 다시 문을 열고 나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다고 본다. 더 나아가 영혼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최고의 덕목(德目)이라고 생각한다. 마르틴 부버처럼 내게 소중한 그 어떤 것(책) 보다 사람의 영혼은 더 값진 것이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예수님 앞에 끌려왔다. 모세의 율법은 이런 사람을 돌로 쳐죽이도록 명령하고 있다.

(레위기 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제 모든 관심은 예수님께로 향했다. 랍비(Rabbi)라 불려지던 예수님께서 어떤 판결을 하실지 이목(耳目)이 집중되었다. 만약 모세의 율법에 어긋나는 판결을 한다면 그것을 핑계삼아 유대인들은 예수님까지 싸잡아 고발하려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적 판단이 아닌 생명 존중의 시각으로 사건에 접근하신다. 그리하여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는 해법을 제시하신다. 예수님은 여인의 죄를 옹호하고자 하신게 아니다. 한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내시는 것을 우선하셨다. 유대인에게 율법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 율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8:5-7)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그렇다. 간통죄를 지은 여인을 정죄하는 것은 쉽다.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법적 논리를 뒤집어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것은 자신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자신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선택을 하셨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거짓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그들을 모두 죽였다. 이들은 모두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의 비호(庇護) 아래 있던 무당(?)들이었는데 엘리야 선지자가 이들을 모두 죽여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정화(淨化)했다. 그러자 이세벨 왕비가 엘리야에게 전령을 보내 24시간 내에 반드시 자기 신(神)의 이름으로 죽이겠다고 통보한다. 이에 엘리야는 목숨을 위하여 유대광야로 급히 몸을 피신한다. 그리고 엘리야가 이세벨의 협박때문에 매우 낙담해 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찾아와 엘리야를 격려해 주었다.

(열왕기상 19:1-3)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열왕기상 19:5-6a)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엘리야는 천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호렙산으로 옮겨간다. 이후 엘리야는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을 삼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의 후계자를 삼는다. 이렇게 함으로 엘리야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린다. 그는 그의 사명을 완수한다. 그리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한다. 에녹(Enoch)에 이어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두 번째 사례자(事例者)가 되었다(창5:24, 왕하2:11)

(열왕기상 19:15-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열왕기하 2: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마치 자동차가 고속도로 중간에 급유를 해야 하듯 인간도 장거리를 가기 위해 '격려'라는 영적인 급유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하나님의 천사의 격려라는 영적인 급유를 받음으로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죽할까?

이런 경험은 사도바울에게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앞 둔 바울에게 찾아오셔서 격려해 주셨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유서나 다름없는 서신이다.

(디모데후서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사도바울이 로마 황제 가이사 앞으로 압송되어 가던 중 지중해 바다 위에서 유라굴로(Euroaquilo)라는 태풍을 만났다. 태풍의 여세는 14일이나 지속되었다. 선원들은 배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물건을 모두 바다에 던졌다. 배 안에 남은 것은 한 끼 식량과 276명의 목숨 뿐이었다.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바울을 격려해 주셨다. 하나님은 바울때문에 276명의 목숨을 담보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바울은 선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결국 바다 태풍 가운데서 모두 살아남아 목적지에 이르렀다.

(사도행전 27:22-25)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렇다. 하나님의 격려는 살게하는 힘이 있다.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격려하심을 받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겐 실패가 없을 것이다. 사람의 격려에도 힘이 있음 같이 하나님의 격려는 살게 하는 능력이 있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격려를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그의 긍휼하심에 기대어 살아가야 한다. 오직 주님만 신뢰하며 나아가야 한다. 우리를 통해 이루실 위대한 일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격려하심(encouragement), 곧 하나님의 용기주심이 우리에게 늘 있길 소망하자.

(이사야 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