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한 문장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Live with one sentence a day) }
(2) "걱정은 나의 삶을 훔쳐간다"
(Worry steals my life)
걱정인형(Worry Dolls)이라는 것이 있다. 중남미 과테말라(Guatemala)의 전통 공예인 걱정인형은 고대 마야 문명(Maya civilization)의 창조와 출산의 여신 이참나(Itzamna)가 태양신으로부터 인간의 모든 걱정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 잠들기 전 걱정인형에게 자기의 걱정을 얘기하고 베개 밑에 넣어두면 아침에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과테말라에서는 걱정인형이 탄생할 수 밖에 없는 역사가 존재한다. 과테말라 원주민은 유럽인의 침략에 이어 끔찍한 내전을 겪었고 화산 등의 자연재해 앞에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눈 앞의 걱정과 공포를 누군가에게 전가시키고자(impute) 했는데 그것이 걱정 인형이었다. 오늘날 우리네 상식으로는 얼토당토 않는(absurd) 주장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근래에 인형을 통한 치료가 치매 환자에게 많이 쓰인다고 한다. 정서적 또는 육체적 불안과 동요에 인형 치료가 감정을 가라앉히고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이 겪는 문제는 인형에게 의존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다른 해결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걱정을 많이 할 수록 모든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간다면 성경은 걱정과 염려를 장려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현인들도 가능한 적극적으로 걱정하기를 교훈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천 년의 시간 동안 그렇게 권면한 사람은 없다. 걱정은 우리의 시간과 영적인 에너지를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참으로 쓰잘데기없는(useless) 생각이 걱정인 것이다.
가수 설운도씨는 '근심을 털어놓고 다함께 차차차, 슬픔을 묻어놓고 다함께 차차차' 하라고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걱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한다.
(마태복음 6:27, 34)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런고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해야 한다. '걱정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Worrying doesn't change anything)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