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한 문장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Live with one sentence a day) }
(8) 인생에는 막타워(Mock Tower)가 있다
군대에서 지상 공수훈련용으로 쓰이는 11.5m 높이의 막타워(Mock Tower)라는 모형탑이 있다. 11.5m의 높이에서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해 뛰어내리는 막타워 훈련은 현역 군인들이 두려워하는 훈련 과목이다. 11.5m는 인간이 가장 큰 공포심을 느끼는 높이라고 한다. 더 높아도, 더 낮아도 고소공포증(高所恐怖症)은 줄어든다고 한다.
이것은 심리적인 이유인데 11.5m 이상의 높이인 경우는 시야가 넓어지고, 땅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높은지 정확히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11.5m 높이일 때 시각적으로 바닥이 정확하게 보여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막타워의 높이는 아파트로 말하면 5층 높이에 해당하고, 고층 빌딩의 경우는 4층 높이가 된다.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도 11.5m 정도면 대부분 무서움을 느끼거나 두려워 한다고 한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11.5m 높이를 두려워 하는 과학적인 이유는 또 있다. 물체가 떨어져서 바닥에 도달할 때까지 한 없이 속도가 증가하는 게 아니라 공기와의 마찰에 의해서 일정 속도 이상으로는 증가하지 않는다. 이것을 종단속도(終端速度)라고 한다. 사람의 경우 11.5m에서 가장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이 높이에서 떨어질 때 바닥 부근에서 종단속도(terminal velocity)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종단속도를 더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물체가 공기 중에서 자유낙하를 하게 되면 초반에는 가속도 운동을 하지만, 점차 공기의 저항력이 커져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과 공기의 저항력이 평형을 이뤄 일정한 속도로 낙하 하는데, 그때 물체의 속도가 '종단속도'인 것이다.
나는 1988년 서울올림픽(Seoul Olympic)이 있던 해에 군(軍)에 입대했다. 강원도 철원 보병 6사단 청성부대에서 복무했는데 30개월 만기 전역하기까지 대여섯 번 막타워를 탔던 것 같다. 그 순간을 기억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얼마나 무서웠던지...그러나 뛰어내려서 떨어져 죽든지, 훈련 조교에게 맞아 죽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다들 맞아 죽는 것 보다는 떨어져 죽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다들 성공했다.
< 내 경험은 40년 가까이 된 옛날 군대의 얘기일 뿐, 지금 군대는 많이 너그럽다고 한다. 혹 군미필자(軍未畢者)가 읽고 있다면 겁 먹지 마시길 바란다 >
이것은 인생살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삶이 끝도 없이 추락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그 상태로 지속된다. 이때 숨고르기(catch my breath)를 잘해야 한다. 자포자기(自暴自棄)를 선택해선 안된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다시 도약(跳躍)해야 한다.
구약성경의 욥(job)의 경우 행복지수 100, 축복지수 100 이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하루 사이에 행복지수 0, 축복지수 0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 이유는 사탄(Satan)이 욥의 가정을 총체적으로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욥은 신앙적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했다. 욥이 하루 사이에 잃은 것은 아들 일곱과 딸 셋, 가축 11,500 마리였다. 곧 그의 모든 것이었다.
폐허(Ruins)에 앉아서 욥은 하나님을 높인다. 찬송한다. 그리고 이것은 회복의 지름길이었다. 욥은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자녀 100%, 가축 200%로 다시 회복된다.
(욥기 1:20-22)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기 42:12-13)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우리의 삶의 질서가 무너지고, 좌절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회복되는 길은 오직 주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만 한다. 예수 안에서는 언제든지 절망이 변해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1, 1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