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3]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시다 (3장)
예수님과 비슷한 시기에 사역의 출발선에 선 인물이 있다. 세례요한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과는 이종 6촌쯤 되는 친척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했다. 친족인 건 확실한데 정확한 것은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본가가 아닌 외가쪽 친척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유다지파이고,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레위지파 제사장이기에 결코 친척관계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의 사역현장은 유대광야였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들꿀)이었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방불케 하는 수도자의 삶이었다. 요한은 유대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요즘이야 광고를 하면 널리 알릴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소문이 나기까지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본문에 보면 사역 초반부터 예루살렘과 유대 땅과 요단강 주변에서 수많은 무리들이 나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앞에 자복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다.
이건 분명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다. 광야의 부흥이었다. 도시나 번화한 사거리에서만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은 장소불문하고 부흥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부흥의 현장에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찾아왔다. 이들도 세례를 받기 원했다. 세례요한은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그들의 삶과 신앙 사이에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얄팍한 신앙인들이었다. 그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며 그들을 책망했다. 오늘날에도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사람들이 있다.
세례요한은 자기에게 집중되고 있는 관심을 의식하고, 자신은 회개의 물세례를 베풀고 있지만 뒤에 오시는 어떤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한다. 모든 이들의 관심이 예수님께로 옮겨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의 이런 고백처럼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그런데 이때 세례요한의 사역 현장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세례요한은 세례를 받으시려는 예수님을 만류하고 자신이 주님께 세례를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것이 의를 이루는 길이고, 합당한 질서라고 하셨다. 결국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임하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명백하게 선포되는 순간이었다. 요즘 말로 공식인증 절차를 거치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보증을 받으셨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열심도 주님보다 귀하지 않아야 한다. 세례요한처럼 주님은 흥하고 나는 쇠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