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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43. 겨자씨 비유 (마13:31-32)

문학n천국 2021. 11. 21. 19:21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43] 겨자씨 비유 (13:31-32)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재직하던 시절 그의 아버지 야곱과 모든 형제의 가족들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왔다. 이것은 가족여행이 아니었고 애굽으로의 온전한 이주였다. 애굽에 내려온 가족들의 숫자를 창세기, 출애굽기, 신명기에서는 70명, 사도행전에서는 75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창48:27, 출1:5, 신10:22, 행7:14). 성서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통일된 답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적은 숫자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굽에 정착한 후 400 년이 흐른 뒤 백성들의 숫자는 땅을 덮을 만큼 많아졌다. (출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번성케 하시므로 노예로 전락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본토 백성들에게 위협이 될 만큼 번성했던 것이다. 430년 애굽생활을 끝내고 출애굽을 할 때 성인남자들의 숫자만 60만명이었다. 여기에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산하면 족히 200만명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70명의 대가족에서 200만명이나 되는 민족을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에는 번성의 원칙이 있다. 반대로 사탄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쇠퇴의 결과가 있다.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다 죽고 나만 남았는데 나또한 위태롭다고 호소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 두셨다고 말씀하셨다. 엘리야는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7천명을 숨겨두고 계셨던 것이다. 그 당시 믿는 자 7천명이면 오히려 부흥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음지에서 하나님의 부흥의 때를 기도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본문에 겨자씨 한 알을 밭에 심었더니 나중에는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13:31-32)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중요한 것은 씨앗의 크기가 아니다. 씨앗이 그대로 있으면 새의 모이 밖에 되지 않는다. 새가 씨앗 하나를 먹었다 해도 간에 기별도 안 갔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씨앗에 임하면 씨앗 하나가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에게 그늘과 쉼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살리시는 역사이다.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은혜가 부어지면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해보자. 어린이 손에 있던 작은 도시락 안에는 보리떡 다섯 개, 작은 생선 두 마리가 있었다. 그 부모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아이에게 적당한 양 만큼 싸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도시락을 가지고 5천명이 함께 나눠먹자고 제안했다면 드디어 미쳤구나 라며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은 예수님만이 현실이 되게 하실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 손에 그 도시락이 붙들렸을 때 5천명이 먹고 열 두 광주리가 남게 되었다. 여자와 아이를 포함하면 최소 만 명 이상이 먹은 것이다. 모두 배불리 먹고 남아서 버려야 할 음식물 쓰레기만 열 두 광주리였다. 이런 광야의 식탁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은혜이다.

겨자씨 한 알,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그것으로 많은 새들의 안식처를 만들어 주시고, 그 나무에서 씨앗 수 만개를 또 얻게 하신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겨자씨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작다고 보잘 것 없다고 스스로 작아지지 말고 나를 통해 일 하실 주님을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새의 여덟째 막내 아들 다윗을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세우셨다.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소년 다윗을 세워 이스라엘과 근동지역에서 명성을 얻게 하셨다. 다윗의 명성은 아직도 식지 않았고 현재진행형이다. 오늘 우리의 삶을 예수님이 터치하시길 소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