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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58. 형제가 죄를 범했다면 (마18:21-35)

문학n천국 2021. 11. 23. 01:04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58] 형제가 죄를 범했다면 (18:21-35)

배우 전도연씨 주연의 영화 <밀양(2007)>의 내용이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유치원생인 아들을 데리고 남편 고향인 밀양에 내려와 정착해 살게 된다. 신애는 피아노학원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날 아들이 유괴를 당하고 만다. 유괴범은 돈을 요구했고 신애는 돈을 준비해 주지만 아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다. 경찰의 추적 끝에 범인이 잡혔는데 범인은 다름 아닌 아들의 웅변학원 원장이었다.

고통 가운데 지내던 신애는 약국 집사님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신애는 신앙생활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어 간다. 그러던 어느날 목사님께서 범인을 용서해 주라며 권면한다. 신애는 교도소를 찾아가 범인을 만난다. 범인은 복역 중에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고백한다. 이제는 신애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다.

그 순간 신애는 충격에 빠지고 만다. 피해자인 내가 용서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이 저 사람을 용서해 주셨다니, 그리고 내가 당신을 용서하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용서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며 회의감에 빠지고 만다. 결국 신애는 하나님과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반대하는 편에 선다는 줄거리이다.

용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용서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를 갖게 해준다. 영화에서처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용서 구하기를 외면하면 안되는 것이다. 용서 구하기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치유되기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본문에 베드로가 주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 여쭈었다. 일곱 번이면 충분하지 않겠냐며 물었다.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하라고 말씀하셨다.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그런고로 용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면 내가 용서를 구할 때는 형제와 이웃의 마음이 치유될 때까지 해야 하고, 형제가 내게 용서를 구하는 상황이라면 무한정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용서는 형제로 하여금 다시 새롭게 출발하게 하는 배려이기 때문이다.

본문에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어떤 임금이 일만 달란트나 되는 어마어마한 빚을 진 종이 빚 갚을 능력이 없음을 보고 임금이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말씀한다. 임금에게는 큰 결단이었다. 일만 달란트는 개인이 결코 갚을 수 없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당시 노동자의 품삯을 일 데나리온이라고 한다면 일만 달란트는 십육 만 일을 일해야 모을 수 있다. 평생을 벌어도 불가능한 목표이다.

(18:23-24,27)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런데 이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동료는 갚을테니 기다려 달라 애원했지만 이 종은 동료를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자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백 데나리온은 자신이 탕감받은 금액에 비하면 푼돈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은 종을 다시 잡아다가 빚 탕감을 취소하고 종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는 죽어야만 감옥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임금이 화가 난 이유는 자기가 불쌍히 여김 받은 것처럼 동료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18:33-34)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그러므로 형제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분명해진다. 언제든 진심으로 형제의 실수나 죄를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엔 그 용서가 또 나를 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용서도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오고, 무자비도 내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두는게 영적인 법칙이기 때문이다(갈6:7).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