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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59. 이혼 사유 (마19:3-12)

문학n천국 2021. 11. 23. 01:05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59] 이혼 사유 (19:3-12)

가정은 깨어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 정하신 바다.
(19: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그럼 포악한 남편이나 악처도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일까? 모든 가정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세우신 가정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보내실 때는 여호와 신앙이 전제된 상황이었다. 하나님은 불신자 가정을 최초의 가정으로 세우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만난 것은 아담의 선택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선택이었다.

하나님이 중매자 되셔서 세워진 첫 가정은 결코 깨어질 수 없는 모델 가정이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에게 확실한 반쪽이었다. 그러나 남녀간의 호감에 의해, 혹은 정욕에 의해 탄생된 가정들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갈등을 표출하고 있고,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지 않는 가정이 깨어질 때 성도들이 구애받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이라면 반대하셔야 할텐데 말이다.

(고전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본문에 모세의 이혼증서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모세의 이름으로 행해진 합법적인 이혼에 대한 규정이다.
(신24: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모세의 이혼증서는 결혼생활을 지속해 나가는데 있어 결정적인 흠이 발견되었을 때 본래의 제자리로 돌이키기 위한 규정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묵인이었다. 이혼을 정당시 한 것이 아니다.
(19: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이혼의 필요성에 동의하시는 유일한 경우는 음행 곧 불륜을 행했을 때이다. 이 사유는 결혼생활에 너무나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음행은 죄악이다. 한 번의 실수로 치부해 버리기 쉬운데 분명 죄악이다. 예전 어른들 말처럼 사람이 사회생활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 쯤 그럴 수 있는게 아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엡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제자들이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자 주님께서 독신에 대해 말씀하신다.
(19:1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주님께서는 독신을 장려하시는 게 아니다. 독신은 목적에 따른 것이다. 사도바울은 독신을 은사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고전7:7-8)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먼저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는 생명의 씨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결혼을 했지만 씨가 없어서 임신이 불가능한 경우이다. 사람이 만든 고자는 환관(내시)들 처럼 어떤 목적에 의해 스스로 선택한 불임이다. 천국을 위한 고자는 사도바울처럼 주님의 복음을 위해 스스로 결혼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이것들 중 무엇이 좋다고 순위를 매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을 위해, 주님을 위해 스스로 좋게 여기는 것을 선택하면 되지 않을까? 결혼도, 이혼도, 고자로 사는 것도 '예수'라는 하나의 목적에만 부합하면 좋지 않을까? 모든 일에 '예수'가 질문이 되고 '예수'가 해답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