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60] 부자 청년의 고민 (19:16-22)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기 위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병행 본문인 막10:17-31절, 눅18:18-30절에 보면 이 청년은 관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에 유대사회에서는 30세가 되어야 관직에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청년은 30대 초반이었을거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공무원 신분인 청년이 부자였던 것으로 보아 많은 유산을 상속 받았다고 보여진다.
예수님은 청년에게 십계명 중 이웃사랑에 관한 부분인 제 5계명에서 제 10계명까지 지키라고 답을 주셨다. 하나님 사랑에 관한 부분인 제 1계명에서 제 4계명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는 알 수 없다.
(19:18-19)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러자 청년은 이 모든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다고 고백한다. 청년의 영적인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청년은 아직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 아직 무엇이 부족한지 궁금했던 것 같다.
(막10: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웃사랑 계명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명령이다. 살인금지, 간음금지, 거짓증언 금지 등은 이웃의 삶을 보전해 주는 노력을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이제 온전하고자 한다면 네 소유를 팔아 이웃을 복되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웃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소극적인 선행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복을 끼치면 영생 얻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뭐 하나 부족해 보이지 않는 이 청년은 결국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말씀을 듣고 근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영적인 당당함은 온데 간데 없고 고개를 떨구고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다.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사람은 돈에 관해서는 너그럽기가 어려운 것 같다. 용서할 수도 있고, 함께 땀 흘릴 수도 있고, 함께 울어줄 수도 있지만 돈의 문제에서는 지극히 이해타산적인 모습이 되는 것 같다.
본문에 등장하는 청년은 아주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금의 흔들림도 없던 그의 태도는 돈 문제가 등장하자 휘청거리고 있다. 근심하며 갔다는 결론을 볼 때 결국 돈 문제는 뛰어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특별히 슬픈 기색을 띠며 갔다는 것으로 보아 그는 후회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괜히 예수님께 물어 보았다가 근심만 얻게 되었다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막10: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러나 부자 청년을 비판하기 위해 본문을 기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 것일까? 한마디로 돈에 발목 잡히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다 좋았는데 돈 문제 하나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챦게 볼 수 있다. 돈이 우리 신앙에 플러스(+)가 되어야지, 마이너스(-)가 되게 해선 안되는 것이다.
이후에 이 부자 청년에 대한 기록은 없다. 어쩌면 훗날 재산을 모두 정리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랐을 수도 있고, 영생과 돈 사이에서 결단하지 못하고 끝까지 근심하며 살았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이 청년은 조금 부정적인 이미지로 지난 이천 년 이상 교회 안에서 거론되고 있다.
비단 돈 문제 뿐일까? 우리가 예수님을 쫓아 살아가는 삶에는 여러가지 장애물이 있다. 그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헌신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의 부자 청년처럼 이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사도바울처럼 이것을 극복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빌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