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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6. 여덟 가지 복(마5:1-12)

문학n천국 2021. 11. 18. 15:41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6] 여덟 가지 복, 팔복 (5:1-12)

마태복음 5~7장은 산상수훈이라 불리는 예수님의 교훈이다. 예수님은 많은 무리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그리고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먼저 팔복에 대해 말씀하셨다. 팔복은 복에 대한 것이지만 그 복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과 영혼이 잘됨의 복이다. 세상적인 부나 성공이 아니다.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천국이 그런 사람의 것이라 말씀하신다. 여기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욕심을 멀리하는 삶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채우려고 한다. 그러나 정말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오히려 자신의 것을 비워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천국 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둘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런 사람은 위로를 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애통하는 자는 세상을 보며 아파하는 사람이다. 세상이 죄악때문에 병들어 가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길에서 역주행 하는 것을 보며 우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것이다.

셋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그런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온유한 사람은 물렁물렁한 사람이다.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이 무엇을 차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사람이 쓸모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를 상속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목이 뻣뻣한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사람이다.

넷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그런 사람은 배부르게 된다고 말씀한다. 세상에는 불법이 판을 치고 있다. 세상은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에 전혀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에 대한 목마름, 갈증이 있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공의로운 환경에 두시는 분이시다. 롯이 소돔성의 죄악때문에 몸부림 칠 때 그를 구원하여 구별된 곳에 두심과 같다.

다섯째,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 그런 사람은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긍휼은 사랑에 기인한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의 삶을 충분히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이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 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또한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여섯째,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 말씀하신다. 마음의 청결함은 선입견을 갖지 않는 깨끗한 마음이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는 것은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판 곧, 남을 판단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깨끗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주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일곱째,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평화는 확성기를 들고 다니며 외친다 해서 찾아오는게 아니다. 먼저는 갈등과 분쟁을 잠잠케 하는 능력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아픔을 살피고 싸매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품을 수 있을 때만 화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여덟째,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다. 그런 자가 천국을 소유한다고 말씀한다. 믿음때문에 오해받기도 하고, 무시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고 평안하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이다. 그럼에도 박해를 피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팔복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그런 공식이 아니다. 육으로 심고 영으로 거두는 법칙이다. 오늘을 믿음으로 선행으로 살아가면 영적인 복이 임하는 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