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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7. 소금과 빛이 되라(마5:13-16)

문학n천국 2021. 11. 18. 15:44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7] 소금과 빛이 되라 (5:13-16)

소금의 용도는 음식의 맛을 내는 것과 부패 방지이다. 생선을 그냥 두면 쉽게 상하지만 소금에 절여 놓으면 신선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장할 때 소금이 없다면 김치를 담글 수 없다. 소금으로 간이 되지 않은 채소는 그냥 가축들이 먹는 여물일 뿐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소금이라고 하신다. 소금은 부패될 것들 가운데 있어야 이름값을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를 소금이라고 하신 것은 우리 주변에 부패될 것들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도 짜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밖에 버려져 밟힐 뿐이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짠맛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예수님께 붙들린 바 된 순간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소금이다. 이제 짠 맛을 내면 된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처럼 이미 그 맛을 잃어버린 소금들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 역할을 잃어버린, 자기 사명을 잃어버린 소금이 있다는 것이다.

소금의 사명은 음식이 부패하여 내다버릴 것이 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다시말해 우리의 사명은 세상이 부패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나 때문에 세상이 더러워지고 썩어져 간다면 소금의 사명에서 멀리 떠난 것이 된다.

어떤 분은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 것은 '염장' 기술 때문이라고 한다. 음식을 오래도록 보관하는 이 방법 때문에 개체수가 줄어들지 않고 번성해 왔다는 것이다. 이 염장에 사용되는 유일한 재료가 소금이다. 인류에겐 참 고마운 흰색 가루인 것이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같은 원리가 아닐까?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심판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것은 소금덩어리 같은 신앙인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음으로 우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빛 앞에서 감출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린 시절 작은 등잔불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이었기에 모든 가정들이 등잔불을 의지해 살았다. 등잔의 작은 심지에 붙은 불이 방 안을 밝혔다. 지금의 전기 불빛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빛이었다. 하지만 등잔불을 밝히게 되면 어둠은 상당부분 물러가고 사물을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게 된다.

등잔불 앞에서 휘청거리는 어둠은 전기불 앞에서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나간다. 이처럼 우리의 삶으로 인해 세상의 그늘진 부분이 밝아져야 한다. 우리로 인해 세상의 어둠과 죄악이 휘청거리며 물러가야 한다. 그런데 불미스러운 뉴스의 중심에 그리스도인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될 때가 많다. 빛이 되기는 커녕 그늘을 드리우는 사람들이다.

그럼, 우리가 일생을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기 위한 해답은 무엇일까? 착한 행실이라고 말씀한다.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이란, 도덕적으로 좀 더 깨끗하다는 수준을 넘어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고전10:31-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