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86] 예수냐, 바라바냐 (27:11-26)
가룟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보낸 체포조에 붙잡혀 총독 빌라도 앞에 서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총독 앞에 세운 것은 유대공동체 자체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로마 총독의 재가를 얻어야만 했다.
당시 빌라도 총독은 로마황제의 신임을 얻어 무려 10년 동안 유대 땅을 통치했다. 하지만 유대인들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빌라도가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독수리 형상의 우상을 앞세우고 부임했기 때문이다. 오직 유일신 여호와만 섬기던 유대인들에게 반감을 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수로공사 등 큰 공사의 비용을 성전세에서 착취해 갔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강한 반감을 호감으로 돌려야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마침 그때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붙잡혀 오신 것이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병행 본문인 막15:2-15, 눅23:13-25, 요18:33-19:16절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던진 첫 질문이자 심문내용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다.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 라고 대답하셨다(11절).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이 대답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고, 요한복음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기 위해 오셨다고 예수님께서 대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18:37-18상)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 지으려 했다. 빌라도가 보니 예수님에게 죽을 만한 죄목은 없어 보였다. 다만 빌라도가 염려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기가막힌 제안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당시 명절이 되면 죄수 가운데 한 사람을 석방시켜 주는 전례가 있었는데 그것을 이용해 유대인들의 마음을 풀어 주려고 한 것이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유월절 명절을 맞아 누구를 특별사면 해 주길 원하는지 물었다. 예수냐, 바라바냐며 선택하라고 했다. 당연히 예수님을 풀어달라고 할 줄로 기대했다. 그래도 강력범 보다는 종교인의 석방을 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요구했다. 바라바는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을 저지른 강력범이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백성들을 선동해 바라바를 외치게 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부르짖게 했다. 공평도 정의도 사라진 무법천지의 현장이었다. 빌라도는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언도하고 집행을 명령하고 말았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십자가 처형을 언도한 결정적인 사실은 예수를 죽이지 않으면 로마 황제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유대인들이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요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유대인들이 원하는 판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여론이 정의를 뒤집은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잘못된 판결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예수님을 살리려는 한 사람의 노력도 있었다. 빌라도의 아내이다. 교회 전승에는 클라우디아라고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유대교 개종자였다. 그녀는 하인을 총독인 남편에게 보내 예수님을 구명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27: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모든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할 것을 요구했다. 단 한 사람 빌라도의 아내만 예수님을 살리기 위해 힘썼다. 우리가 만약 그 현장에 있었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예수인가? 혹은 바라바인가?
아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바라바가 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99.99%의 여론이 바라바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홀로 예수 석방을 외쳤다면 그는 유대 사회에서 축출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진리의 편에 서서 홀로 고독한 투쟁을 할 것인가? 최소한 빌라도의 아내 클라우디아는 고독한 선택을 했다고 보여진다.
오늘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욕되게 할 때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예수님을 높이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 만이 참 생명이시고 구원이시고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