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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8. 율법의 일점일획(마5:17-20)

문학n천국 2021. 11. 18. 15:45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8] 율법의 일점일획 (5:17-20)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선포하신 신앙과 삶에 대한 규범이다. 구약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 안에서 인생을 시작하고 또 인생을 마감했다.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 할례이다. 남자 아이들은 태어난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했다. 할례는 율법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부모의 서약 같은 것이다. 아기의 신앙고백으로 보기는 어렵다. 신약시대의 유아세례도 부모의 서약이지 아기의 신앙고백이 아닌 것과 같다.

그리고 율법하면 떠오르는 것은 제사와 절기이다. 율법에서는 다섯가지 제사를 규정하고 있다.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소제이다.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이고, 나머지는 모두 동물 제사이다. 이 제사들은 죄용서에 대해 하나님께 반응하는 행위이다.

또한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절기가 있다. 유월절(무교절), 오순절(맥추절), 장막절(수장절)이다. 이 절기들의 주제는 감사이다.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로 응답하는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십계명도 기억해야 한다. 십계명도 제사나 절기처럼 권고사항이 아닌 명령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준수사항이다. 십계명의 주제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규범이다.

이것들 외에도 많은 규범들이 있다. 구약 백성들은 이런 규범의 홍수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의해 율법 조항들은 더 세분화되고 까다로워졌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게 아니라 완전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한다. 이 율법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을 거라 하신다. 그런고로 율법을 훼손해선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율법을 보존하려 애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의로워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다.

오늘날에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율법을 중시하며 복음이 울법이고, 율법이 복음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니 지탄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약시대를 살아가면서 복음의 가치보다 율법의 가치를 상위에 두려는 생각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갈4:3-5)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율법)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3:23-24)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몽학선생)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일 뿐이다. 그런고로 그리스도께로 안내했으면 율법은 그리스도께 편입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녹아져야 한다. 율법은 온전히 주님의 말씀안에 용해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율법을 높이기 위해 오신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초등학교 수학은 중등 수학으로 가는 길이지 초등수학으로 중등수학을 해석하려 하면 안되는 것이다.

결국 율법은 주님의 말씀인 복음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율법은 복음 안에서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복음이 율법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율법은 좋은 것이지만 율법주의는 복음의 빛을 약화시키기에 대단히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