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복음산책 90(최종). 예수님 부활하시다 (마28:1-20)

문학n천국 2021. 12. 28. 18:10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90.최종회] 예수님 부활하시다 (28:1-20)

예수님께서 금요일 오후 3시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다음날 안식일을 지나, 주일 아침 곧 새벽 동틀 무렵에 부활하셨다. 삼일 째 되는 날이다. 시간으로 계산해 보면 약 40 여 시간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성경이 부활하신 시간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으니 운명에서 부활까지 정확한 시간을 산출할 수는 없지만 대략 40 시간이라고 보여진다.

그럼 성경은 무덤에 계신 40 시간 동안 예수님의 행적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벧전3:18-20)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예수님은 노아의 시대를 비롯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한 자들이 있는 지옥에 영으로 내려가셔서 예수님 자신을 증거하셨다고 말씀한다.

사실 이 말씀은 이천 년 교회 역사 동안 가장 논란이 되었던 말씀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이 말씀에 대해 베드로의 뜻을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선언했다. 천주교에서는 이 말씀을 근거로 연옥설이라는 교리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개혁교회들은 연옥설을 비성경적인 것으로 반대한다.

복음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전파되는 것이지 죽은 자에게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개혁교회들이 취하는 입장이다. 다시말해 예수님이 지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적은 분명해진다. 믿기를 거부했던 이들에게 예수님이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하시기 위함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을 믿고 섬겨야 한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기회는 지금이다.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우리는 결코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을 방문한 첫 방문자는 여자들이었다. 마28:1, 막16:1, 요20:1절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등 세 명의 여인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이 예수님의 무덤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한 것은 '빈 무덤' 이었다. 예수님이 누워 계시던 자리에는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준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갈릴리로 먼저 가셨다는 것이다.

이 여인들이 무덤을 방문한 것은 예수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함이었다. 물론 금요일 오후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품과는 별개일 것이다. 끝까지 헌신을 다하는 여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막16:1-2)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이 여인들에 의해 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에게도 알려졌다. 그리고 그 중 요한과 베드로는 무덤까지 뛰어와 부활을 직접 확인했다(요20:3-8).

그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복음전파를 시작하신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갈릴리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땀과 수고와 비전이 배어 있었다. 이제 하늘로 돌아가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새롭게 복음전파 출정식을 하시려던 것이 아닐까? 이제부터는 부활이라는 위대한 가치를 핵심으로 하는 복음전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전파를 당부하시면서 마지막 메시지를 주셨다. 이 말씀을 '절대 지상명령(Great Commission)' 이라고 부른다.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목표는 하나이다.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것이다. 세례나 교육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단계이다. 제자는 스승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기업이나 단체에서 직무대행의 직책을 수행하는 것과 같다. 스승의 일을 스스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제자이다.

구약시대 엘리야 선지자가 사명을 다 마치고 기쁨으로 승천할 수 있었던 것은 엘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스승의 사역을 그대로 이어받아 영적으로 암흑과 같던 북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 바울에게는 제자 디모데가 있었다.  세례요한에게는 베드로, 안드레 같은 제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세례요한의 순교 이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요1:40).

성경공부 가르쳤다고 다 제자라고 할 수는 없다. 제자는 지식 전수가 아니라 신앙과 삶의 대물림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먼저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세워야 하는 것이 제자 세움이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목사님이 주일설교 중에 자기가 목회를 이만큼 하는 것은 목회 스승인 고 옥한흠 목사님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옥한흠 목사님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대로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자를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한 두 사람이 아닌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다. 우리는 자신의 나태함을 돌아보아야 한다. 현실에 취해서 동물적인 본능으로만 살면 안되는 것이다. 복음에 매여 살며, 복음을 전하며, 복음의 사람을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