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기적을 말하다} 시리즈 13
김상용목사의 {기적을 말하다} 시리즈 13
[13] 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기적 (왕상17:8-16)
이스라엘은 사울왕과 다윗왕, 그리고 솔로몬까지는 하나의 왕국, 곧 통일왕국이었다. 그러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면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 분열왕국에서 남유다는 20명의 왕이 통치했고, 북이스라엘은 19명의 왕이 통치했다. 남유다 왕국은 B.C. 930~586년까지 344년 동안 지속되었고, 북이스라엘 왕국은 B.C. 930~722년 까지 208년 동안 지속되었다.
북이스라엘 왕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은 일곱 번째 왕인 아합 왕이었다. 아합은 시돈 출신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에 이방신 바알과 아스다롯을 들여 온 인물이다. 이들 부부의 악행은 열왕기서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바알과 아세라 거짓 선지자들 850명을 이스라엘 땅에 불러들였고, 이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해 주었다. 이스라엘 땅을 우상의 땅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이다. 그리고 아합왕과 함께 나봇을 죽여 포도원을 탈취하는 등 많은 악행을 자행했다.
하나님께서 이 악한 아합왕에게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렇게 선포하게 하셨다. '내 말이 없으면 이 땅에 수 년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아니하리라' (왕상17:1). 아합왕의 심기를 건드린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요단 앞 그릿시냇가로 가서 숨으라고 말씀하셨다. 아합왕의 다음 행동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리라.
(왕상17:2-3)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요단 앞 그릿시냇가로 피신한 엘리야를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 돌보셨다.
(왕상17:5~6)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보내 아침 저녁으로 엘리야에게 뗙과 고기를 공급하셨다. 그리고 시냇물을 마시게 하셨다. 정말 대단한 역사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까마귀가 도시락을 배달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까마귀가 고기 냄새 나는 도시락을 훼손하지 않고 선지자에게 온전히 배달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선지자의 예언대로 비나 이슬이 내리지 않자 그릿 시냇가도 곧 마르고 말았다. 선지자가 마실 물마저 없어지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방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서 머물라고 하셨다. 이미 과부를 협력자로 예비해 놓으셨다고 하셨다.
(왕상17: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갔을 때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과부를 만났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떡 한 조각과 물 조금을 부탁했다. 과부는 불쾌해 하지 않고 자신의 형편을 설명했다. 어쩌면 엘리야 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과부였다.
(왕상17: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과부에게 예언적인 말을 선포했다. 선지자를 먼저 대접하면 가뭄이 지나기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과부는 고민해야 했다. 마지막 한 끼를 누가 먹어야 하는가?
(왕상17:13-1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아멘하기 쉽지 않은 요구이다. 마지막 끼니를 거리낌없이 내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히려 선지자에게 욕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 참 염치 없다고, 하나님의 종이 남의 마지막 한끼를 탐내도 되느냐며 따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부는 선지자의 말에 순종한다. 아마도 과부는 육신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헌신을 생각했던 것 같다. 마지막 한 끼를 드리고 가야겠다는 신앙적 판단이었던 것 같다.
(왕상17:15-16)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기적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삼년 육개월의 기나긴 가뭄의 기간 동안 통의 가루가 없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없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과부의 순종이 기적을 있게 했다. 사람이 넉넉할 때는 여유를 과시하기 위해 일부를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줌의 식량을 내놓는다는 것은 다른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과부는 헌신했던 것이다. 한 끼 던져주고 나서 좋은 일 했다며 자족하지 않고 가뭄이 지나기까지 엘리야의 식탁을 준비했다. 매일 매일이 기적 체험이었다. 통에 가루를 퍼내면 또 채워져 있고, 기름병을 부으면 또 채워져 있었다.
신약시대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해 본다. 어린 아이가 가져 온 도시락 한 개, 이 도시락은 제자들이 강제로 협박해서 빼앗은 게 아니다. 어린 아이가 예수님께 즐거이 드린 그의 유일한 끼니였다. 그 작은 도시락 하나로 어른 남자만 오천 명이 먹었다.
내 손에 있는 마지막 그 무엇인가를 내려놓는 훈련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앞에서 그것은 손실이 아니라 기적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배고파 하는 외아들의 얼굴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먼저 생각한 사르밧 과부의 믿음은 찬사를 받을만 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과부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과부에게 신앙적 자부심을 갖게 해 주셨다.
헌신은 대부분 기적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오지 않는다. 손해 혹은 불편함의 이름표로 다가온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는 것, 이것이 믿는 자의 능력이 아닐까? 사르밧 과부의 아멘이 그의 삶과 가정을 지켜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아멘의 사람이 되고, 기적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