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기적을 말하다} 시리즈 23
김상용목사의 {기적을 말하다} 시리즈 23
[23] 오천 명을 먹이시다 (요6:1-15)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려 배부르게 하셨다. 이것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 계속된 매일의 기적이었다. 하늘에서 내린 이 양식의 이름을 백성들은 '만나' 라고 이름 지었다. 세상에 원래 없던 것이기에 이름을 지어야 했다.
(출16:13-14)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출16: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은 토지의 문제도 아니고, 씨 뿌림의 문제도 아니고, 경작의 문제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함을 깨닫게 한다. 일반적으로 광야는 굶주림과 위험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는 광야에서도 안전하며, 풍성하고 기름진 식탁을 즐길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신약성경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유일한 기적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이 기적 또한 구약의 만나와 메추라기처럼 백성을 먹이신 기적이다. 오병이어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라는 의미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었던 장소에 대해서는 마태는 빈 들, 마가는 한적한 곳, 누가는 벳새다, 요한은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 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네 가지 표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갈릴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벳새다의 넓은 들녘이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벳새다와 디베랴는 갈릴리 호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맞은 편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렇게 한적한 곳에 데려오신 본래 목적은 제자들에게 쉼을 주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이 전도여행으로 말미암아 고단했기 때문이다. 한편 백성들은 이미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에 벳새다까지 추적해서 모여왔다.
(막6:30-31)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요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이때는 유월절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유대 명절을 앞두고 민족 대이동이 아닌,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의 집단 이동이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남자만 오천명,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족히 만 명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한 방향으로 움직였으니 집단 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쫓아 온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고, 또한 그 중에 있는 병자들을 치유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쉼을 잃었지만 기적 현장의 목격자가 되었다.
(마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눅9: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이렇게 무리들이 예수님 앞에 머물며 은혜 받는 동안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이제는 무리들을 돌려 보낼 시간이 되었다. 제자들은 무리들의 오붓한 저녁을 위해 그들을 돌려 보내자고 주님께 말씀드렸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마14:15-16)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은 당황했다. 군중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보니 아이의 도시락 하나가 전부였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을까? 제자들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무리들을 마을이나 촌으로 보내 각자가 음식을 사 먹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제자들이 오천 명의 저녁 식사로 난감해 할 때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질문하셨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절). 빌립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금씩 받을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요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아마 빌립은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빌립은 대충 인원을 계수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한 남자들에게 조금씩 받게 하더라도 이백 데나리온이 모자랄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이 말은 여자와 아이들도 그곳에 많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때 제자 안드레가 한 아이의 작은 도시락 하나를 주님께 가져왔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이 도시락이 최선이라며 내밀었다. 제자들은 그 도시락으로 기적을 경험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요6:8-9)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방법이 선포되었다.
(요6:10-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무리들을 오십 명씩, 백 명씩 앉히게 했다(막6:40). 그리고 그 작은 도시락을 두 손에 들고 하나님께 축사하셨다. 축사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는 뜻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오 우리 주 하나님, 땅으로부터 음식을 내신 우주의 왕께 감사하나이다 우리들에게 포도나무의 열매를 제공하신 분께 감사하나이다' 라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예수님의 감사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감사는 소모적인 행위가 아니다. 감사는 생산적인 활동이다. 예수님의 감사기도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하나의 좌표가 된다. 어려워도 감사하고, 잘 되도 감사하고, 막막해도 감사할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오늘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 보여 주실 것이다.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감사이다. 진정한 감사는 기적을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