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기적을 말하다} 시리즈 27
김상용목사의 {기적을 말하다} 시리즈 27
[27]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키다 (행3:1-16)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다. 제 삼시(오전9시), 제 육시(정오), 제 구시(오후3시)이다. 유대인들은 오전 6시를 하루 시작의 기준 시각(時刻)으로 삼았기에 오전 6시가 제 1시가 된다.
구약시대 다니엘은 메대와 바사제국 총리로서 이방나라를 섬기면서도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경건을 말할 때 기도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한다고 본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감없이 거룩한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대한 선지자나 주의 종들은 오직 기도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이 기도했던 것이다.
(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예수님 승천하신 후 열두 사도들도 경건한 유대인들처럼 습관을 쫓아 성전을 찾아 기도했다.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도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맞춰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성전 입구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게 된다. 앉은뱅이의 나이는 40세였다(행4:22). 두 사도와 앉은뱅이는 서로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먼저 앉은뱅이가 두 사도에게 관심을 보였다. 돈을 구걸하기 위함이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얼마간의 돈이 있었는지, 혹은 아예 가진 게 없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만약 사도들에게 약간의 돈이 있어서 몇 푼 던져주고 잰걸음으로 지나갔다면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앉은뱅이가 사도들에게서 얻고자 한 것은 현금이었다. 예수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 앉은뱅이는 싫든 좋든 간에 예수님의 이름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앉은뱅이는 순간 실망했을지 모른다. 원하는 것을 주지도 않으면서 시간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행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그러나 잠시후 그는 자기 몸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게 뭐지? 혼란스러워지는 순간 베드로가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벌떡 일어났다. 40년만에 처음으로 일어서게 된 것이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니 넘어지지도 않았다. 그때서야 그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행3:7-8)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그는 뛰며 서서 걷기를 반복했다. 조금의 어색함이나 불편함도 없었다. 완전한 치유를 경험한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감격하며 전심으로 찬양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고 소리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 보던 사람들은 심히 놀랐다.
(행3:9-10)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이 날은 앉은뱅이에게 인생 최고의 날이 되었다. 두 사도들은 성공적인 사역을 경험한 날이었고, 이 기적을 목도한 많은 사람들은 신앙의 능력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한 날이 되었다. 모두가 하나님을 체험한 날이었다.
중세 시대를 대표하는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어느날 교황청에 갔다. 교황은 쌓인 돈더미에서 돈을 세고 있었다. 교황이 아퀴나스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라고 말할 필요가 없게 되었네'. 은과 금, 곧 재정이 풍성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아퀴나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에게 은과 금이 많아지면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일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환경 탓을 할 때가 많이 있다. 조금만 더 좋아지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이 주님을 위한 최선의 상황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비록 가진 것이 없지만, 제 구 시 기도 시간이 촉박하지만 지금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가장 좋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지금이 앉은뱅이를 일으킬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태어나면서 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치유되어 일어나 걷자 사람들이 두 사도 앞으로 몰려 왔다. 사람들은 제 구 시 기도 시간은 잠시 잊은 채 두 사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예루살렘 모든 예배자들이 다 아는, 그리고 오랜 세월 성전 미문 앞에 앉아 있던 그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엘리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이 아직도 주의 종들을 통해 우리를 돌보고 계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런 기류가 느껴졌던지 두 사도는 단호하게 우리를 주목하지 말라고 선언한다.
(행3:11-12)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와 요한은 결코 자신들의 경건, 곧 개인의 영적인 능력 때문에 앉은뱅이가 일어난 게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약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기들을 주목한다면 앉은뱅이를 일으킨 목적이 왜곡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도는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선포하게 된다.
(행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벗어 버리도록 도와야 한다. 내 것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높임을 받을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모든 눈이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자기를 낮추었다. 오늘 이들의 참 겸손과 경건을 배우고 닮아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