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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문학n천국 2022. 2. 14. 09:06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1]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는 순례객들이 가장 의아해 하는 것은 '어떻게 이런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 라는 의문이라고 한다. 평지 보다는 산과 골짜기가 많고 대부분의 땅이 척박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은 우기가 끝나가는 3월 중순 부터 노란 꽃, 빨간 꽃들이 들판에 어우러진다. 그러나 일 년 중 한 달 정도 뿐이다. 나머지 기간은 건조하고 황량하다.

미국에는 567개의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는데 주로 사막 인접지역들이다. 이곳에 사는 인디언들의 주된 산업은 염소를 통해 젖(우유)를 얻고 양봉을 통해 꿀을 생산하는 것이라 한다. 젖(우유)과 꿀은 사막에 사는 사람들의 중요한 수입원인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얼핏 꽤 괜챦은 환경인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한 팔레스타인은 욕심낼 만한 땅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불평을 유발하는 환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땅을 선물하셨다. 뭔가 다른 의미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신11:10-12)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땅이라는 것이 성경의 해석이다. 이스라엘의 강수량은 연 700mm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4~10월까지는 거의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수치로만 보면 물 부족 국가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심과 돌보심이 없으면 안되는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인 것이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돌보시고 은혜를 부어 주시는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이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해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 보다는 더 분명하게 의미를 파악했을거라 생각한다. 그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셨고, 아침에는 만나로, 저녁에는 한 달 동안 메추리기를 보내셔서 배부르게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실물로 본 적이 없다. 샘플(sample)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단품 메뉴인 반면 오늘날엔 수백 수천 가지의 좋은 음식들이 동네 골목마다 즐비하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의 직접 공급하심이 아니기에 비용을 지불하거나 혹은 노동력을 제공해야 얻을 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들녘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여기까지는 사람의 수고로 얻은 것이다. 그저 어린 아이에게 적합한 작은 도시락일 뿐이었다. 조금은 궁색한 도시락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축사(감사기도)가 있은 후 이 도시락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단체 급식의 원인이 되었다. 남자만 오천 명,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적어도 만 명 이상이 즐긴 식탁이 되었다.

우리가 직장을 다니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은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고자 함이다. 물론 권장되어야 할 모습이다. 그러나 내가 발버둥쳐야 겨우 버텨 가는 삶 보다는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시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이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복된 삶의 비결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다. 다시말해 젖과 꿀이 늘 흘러 넘치는 삶의 비결인 것이다.

그럼 우리 삶에 젖과 꿀이 늘 흐르게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요약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찌보면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고 하나님의 소리만 듣는 것이 어려워 보일 수도 있다. 어렵기에 비결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면 강조할 이유조차 없는 것이다.

(신11:13-15)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삶과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아닌 저주를 보내시는 삶인데 바로 다른 신을 섬기는 경우이다. 다른 신을 섬기게 되면 재난이 끊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신을 섬기거나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늘 문이 닫혀 버리는 것이다.

(신11:16-17)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한다는 것은 단순히 설교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씀을 듣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독려하는 것이다. 자기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꼭 무슨 열매를 내야만 좋은 평가를 받는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태도이다.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 치는 그 모습이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잘 준행하기 위해 말씀을 기록하는 노력을 했다. 눈에 띄는 공간 여기 저기에 말씀을 기록하여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한 노력을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11:18-20)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우리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시는 은혜는 말씀에 있다. 말씀이 통로이다. 우리는 말씀 안에서 늘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도도 매우 소중하고 찬양도 매우 소중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녹아지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다윗처럼 말씀을 사랑하면 좋겠다. 다윗처럼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이 되면 좋겠다.
(시119: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