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산책 22. 무덤에서 사는 사람 (마8:28-34)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22] 무덤에서 사는 사람 (8:28-34)
예수님께서 가다라(거라사) 지역을 방문하셨는데 예수님이 지나시는 길에 무덤들이 있었고 그 무덤에는 두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귀신들린 사람들이었고 무섭고 사나워서 사람들은 그 무덤을 피해 먼 곳으로 돌아서 통행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막 5:1-20절, 눅 8:26-39절의 내용과 종합해 보면 이 사람들은 여러번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결박 당했음에도 그 쇠사슬을 끊어버릴 만큼 그들의 힘은 강했다. 그들은 옷도 입지 않았으며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고, 돌로 자기들의 몸에 자해를 했다고 말씀한다.
그런데 이 귀신들린 사람들이 멀리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님께 달려와 엎드려 절하며 외쳤다.
(8: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귀신들은 왜 예수님을 모른체 하지 못했을까? 자기들을 무너뜨릴게 분명한데 왜 도망가지 못하고 급하게 달려와 엎드릴 수 밖에 없었을까? 이에 대해 마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막5:7-8)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 이미 귀신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명령을 귀신들은 거부하지 못했다. 사람의 말이라면 오히려 공격해 왔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심판의 권세가 있기에 귀신들이라 해도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귀신들은 다급해졌다. 그 두 사람에게서 나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 들어갈 곳을 찾았다. 귀신들은 그 지방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예수님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귀신들에게는 우선 과제였다. 그래서 귀신들은 돼지떼가 먼 곳에서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돼지에게 들어가기를 예수님께 간청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름을 물으셨다. 귀신들은 군대라고 대답한다. (눅8:30-31)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귀신들은 그 지방에서 떠나지만 않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지금 이 시간 무저갱 곧 지옥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귀신들은 예수님의 허락을 받아 수 천의 군대 귀신들이 한순간에 돼지떼에게로 들어갔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이천여 마리의 돼지떼는 갑자기 몸 속을 파고드는 귀신들의 에너지 때문에 발작을 일으키고 뒤집어지더니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몸에 불이 붙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물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무당들에게 귀신이 임하면 서슬퍼런 작두 위에서 춤을 추는 것 또한 귀신들의 에너지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수영을 잘 못하는 돼지들은 바다에서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던 돼지 사육사들은 충격에 빠졌고 허탈해졌다. 한순간에 돼지 이천 마리를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곧 읍내로 들어가서 이 모든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달려 나왔고, 잠시 놀랐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께 이곳을 떠나달라고 간청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놀란 것은 잠시, 이제 그들은 경제적 손실을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이 이곳에 계심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손해를 봐야 하는지 계산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예수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라며 그곳을 떠나가시길 간청했다.
신앙이 우리에게 유익한 결과를 주면 감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신앙으로 인한 상처나 손해가 발생하면 예수님도 마다하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다. 거라사인들은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섬기고, 치유받고,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를 스스로 걷어 차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삶 속에서 밀어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