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 영혼을 살리는 지진이 있다
신앙에세이 - 영혼을 살리는 지진이 있다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골리앗, 노 프라블럼(Goliath, no problem)}
(부제 : 세상 앞에서 주눅 들지 않기)
[12] 영혼을 살리는 지진이 있다
초대교회의 세계선교는 안디옥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기독교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했다. 그리고 이들의 수행원으로 마가(요한)도 일행에 포함시켰다. 이들은 실루기아 항구를 떠나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 섬에서부터 선교를 시작해 소아시아(지금의 튀르키예) 땅에 복음을 전했는데 이것이 1차 선교 여행이다.
(행13:2-5)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 여행을 마친 후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에 복귀해 함께 목회했다. 그러던 중 바울이 바나바에게 2차 선교 여행을 제안한다. 바나바는 조카인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바울이 이를 반대함으로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투고 헤어진다.
바울이 마가를 반대한 이유는 1차 선교 여행 도중에 마가는 중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바울의 눈에 마가는 사명감이 부족해 보였던 것이다. 여기서 마가는 신약성경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요한이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1차 여행 때와 같이 구브로 섬으로 떠났고, 바울은 실라를 선택해 육로를 통해 소아시아 지역으로 선교를 떠난다. 그러나 훗날 마가요한은 사도바울이 아끼는 동역자가 된다(골4:10).
(행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행15:37-40)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에는 실라와 디모데가 함께 했고 고린도에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합류했다. 그리고 2차 선교 여행에서 비로소 유럽 선교의 문이 열렸다. 본래 바울은 유럽 선교를 계획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울 일행이 아시아 땅 드로아에 있을 때 성령께서 환상을 통해 유럽 선교를 깨닫게 하셨다. 바울은 곧 배를 타고 유럽의 관문인 마게도냐로 건너간다.
(행16:7-10)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2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바울은 얼마동안 안디옥 교회에 있다가 다시 3차 선교 여행을 떠난다. 2차 선교 여행 중 세워진 교회들을 방문해 그들의 신앙을 강건케 하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바울의 선교 여행의 기간은 1차, 2차, 3차를 합산해 약 10년 정도이다. 이 기간 동안 바울이 이동한 거리는 12,000~14,000km로 추정한다.
특별히 바울의 선교 여행은 지중해 인근지역에 주로 집중되었다. 지중해 인근에 번창한 도시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산, 인천, 울산, 목포, 군산 등 바닷가 도시들이 번창한 것과 같다. 또한 이동을 위해 해로(海路)를 이용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 일행은 매번 선교 여행을 마친 후 안디옥으로 복귀할 때는 육로를 통하지 않고 배를 타고 돌아왔다.
유럽 선교는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서부터다. 빌립보로 건너간 바울은 자색 옷감장사인 루디아를 만난다. 루디아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곧 바울의 동역자로 거듭난다. 출발이 좋았다. 루디아의 가족들 또한 믿고 세례를 받았다.
(행16:12-14)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리고 다음 전도 대상을 찾던 중 바울은 귀신들린 한 여종을 만난다. 점을 치는 여종이었는데 그것으로 주인을 크게 이롭게 하고 있었다.
(행16:16-18)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여종이 점을 잘 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귀신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귀신이 그녀 안에서 사람들의 은밀한 일들을 말하게 했기 때문이다. 여종의 주인들은 뜻하지 않게 큰 수입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여종은 바울을 보는 순간 하나님의 종임을 알아보았고 바울을 쫓아다니며 구원의 길이 그에게 있다고 소리쳤다. 며칠을 그렇게 하자 괴로워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쫓아냈다. 그러자 여종의 정신이 온전해졌다. 그러나 점치는 능력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바울 일행을 붙잡아 로마 관리들에게 끌고 간다. 그리고 증인들을 매수해 이상한 풍속을 전한다며 집단으로 고발한다. 로마 관리는 사실확인을 거치지 않고 바울 일행에게 매를 많이 치게 한 후 깊은 지하 감옥에 가두고 발을 차꼬에 채워둔다.
(행16:19-24)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복음이 루디아에게는 구원의 길이었지만 여종의 주인에게는 사회적 해악(害惡)이었다. 여종의 주인은 분노했다. 손해를 묵과할 수 없었다. 아마 여종의 주인은 돈으로 사람을 자주 매수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순식간에 거짓 증인들을 불러모아 로마 관리를 압박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손해는 숨기고 바울이 이상한 풍속을 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렇게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출발이 좋았던 것도 잠시 대형 악재(惡材)를 만났다. 발이 차꼬에 묶인 죄인의 신세가 되었다. 이쯤되면 절망할 것 같은데 바울과 실라는 억울한 심정을 누르고 그 밤에 지하 감옥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을 한다. 억울함 때문에 잠도 안 올 것 같은데 늘상 그랬듯이 기도하고 찬양한다. 뭔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상황이다.
(행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양을 마치자 옥터가 움직이는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다. 그리고 모든 죄수들의 매인 것이 풀어진다. 그러나 지진이 나서 차꼬가 풀어진 것은 아니다. 지진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볼 때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풀어진 것을 볼 때 누군가의 상식을, 누군가의 삶을 뒤엎어 놓을 목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행16:26-27)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지진으로 인해 가장 크게 반응한 사람은 간수이다. 간수는 깜짝 놀라 바울 앞에 엎드린다. 그리고 뜬금없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지 묻는다. 불과 몇 시간 전 상관의 명령을 받아 바울을 풍기문란죄(disorderly conduct)로 감옥에 처넣었던 사람이 이제는 기독교의 구원을 묻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다. 기도하고 찬양했을 뿐인데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를 일으켜 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 교리인 예수구원을 전한다.
(행16:29-31)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그 밤에 간수와 그의 가정은 구원받았다. 기쁨으로 충만했다. 이 간수 가정의 구원은 귀신들린 여종의 치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일로 감옥에 갇혔지만 결과적으로 또 다른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을 우리는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우리는 세상 앞에 주눅들지 않고 기도와 찬양으로 내 안에 채우면 되는 것이다.
(행16:33-34)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이후에 귀신들린 여종과 그의 주인에 대한 기록을 성경은 말씀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잃어버린 것 때문에 슬퍼하며 분노하며 삶을 소모했을 것이다.
하지만 간수는 신속히 지나쳐가는 구원의 이름을 붙잡았다. 단 한번의 기회 앞에 엎드려 은혜를 구했다. 간수는 현명했다. 구원을 거머쥔 그가 지혜로운 사람이다. 세상은 결코 견고하지 않다. 지진 한번이면 다 무너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에게 영원한 산성(Fortress)이다. 우리는그 이름을 붙들어야만 한다.
(시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