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 하나님께로 달려가라
김상용목사의 <잠언서> 에세이
{ 솔로몬에게 듣는.. 인생 사용 설명서 }
[12] 하나님께로 달려가라
(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아버지께서 먼저 소천(召天)하시고 어머니는 2년을 더 계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 홀로 고향 집에 계실 때 내려가보니 집 안 곳곳에 전에 없던 센서(Sensor)가 설치되어 있었다. 홀몸 노인들의 위급상황이나 고독사(lonely death)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지자체에서 설치해 준 것이었다. 전화기도 바뀌어져 있었는데 응급버튼이 있어 그 버튼만 누르면 119 구급대로 집 주소와 상황이 자동으로 신고되는 기능이었다. 모두가 홀몸 노인들을 위한 안전 장치였다. 그걸 보며 우리는 참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도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다. 재앙으로부터의 안전(safety)이다. 이들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연합된 힘을 발휘하고자 했다. 그들의 모토(motto)는 '흩어지지 말자, 망하지 말자' 였다. 홍수 같은 자연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시날평지에 바벨탑을 건축한다. 아마도 바벨론 시날평지에 정착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지대가 높은 산악 지역을 중심으로 살았을 것이다. 노아의 방주가 최종적으로 머문 곳이 아라랏산(Ararat)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인구가 점점 많아지면서 평야 지역으로 이주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라랏산의 위치는 여러 설(說)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터키 지역을 말한다. 터키(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아라랏산은 높이가 5,137m 이고 만년설(icecap)에 덮여있다. 아라랏산은 백두산(2,744m)의 거의 두 배의 높이다.
바벨탑 건축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과는 배치(背馳)되는 계획을 실행했다. 하나님의 뜻은 노아의 후손들이 온 땅에 흩어져 하나님의 문화, 곧 신앙적인 문화를 이루어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
(창세기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바벨탑 건축 시기는 노아의 홍수(B.C.2,350년) 이후 이백 여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보다 짧은 백 년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때 노아는 팔백 세 쯤 되었고 생존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아가 왜 바벨탑 건축을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너무 고령자(senior citizen)인 탓일까?
(창세기 9:28-29)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바벨탑은 어쩌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의 표출이다. 다시는 물로 심판하시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곧 무지개 언약을 믿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하나님의 심판, 곧 노아의 홍수를 잇는 제 2의 심판을 대비하려 했던 것 같다.
(창세기 9:11, 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바벨탑의 높이는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 측량한 결과 약 90m 쯤으로 추산한다. 현재 우리나라 건축법상 아파트 바닥에서 천장까지 층간 높이는 2.2m이다. 다시말해 바벨탑은 아파트 40층 정도 되는 높이다. 물론 지금 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바벨탑 높이 90m가 건축 당시의 크기와 일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 시대 사람들은 하늘 꼭대기에 닿기 위해 최대한 건물을 높이 쌓아 올렸다. 바벨탑은 성경 속 건물 가운데 최고층 건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쌓아 올린 바벨탑은 준공식(completion ceremony)을 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으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흩어진 원인은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여러 개의 언어로 나뉘어져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함께 바벨탑을 건축했던 사람들 사이에 갑자기 소통이 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 가운데도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나 되었다. 그리하여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모여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결국 사람들이 건축하려던 바벨탑과 도시 건설 계획은 이렇게 언어의 혼잡으로 무산되었다.
(창세기 11:6-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노아의 홍수 때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곳은 노아가 제작한 방주 뿐이었다. 이것은 방주가 구조적으로 튼튼했다기 보다 하나님의 손이 붙들고 계셨기 때문이다. 다시 노아의 홍수같은 재앙이 임한다고 가정할 때 최근 21C에 제작된 선박이 반드시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최신 군함이 일반 선박과 부딪혀 침몰할 뻔한 사건은 가끔 뉴스에서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안전한 곳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는 공간 뿐이다.
(시편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중국 진시황(秦始皇)은 북방 민족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축조했다. 그 길이는 6,700km에 달한다. 10년 동안 군인 30만명이 동원되었고 백성 수백 만명이 동원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부분은 명나라 때 축조된 것인데 이 만리장성은 명나라를 지켜주지 못했다. 북방 만주족(여진족)이 만리장성을 넘어와 명나라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만주족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웠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요새도 안전을 담보해 주지는 못한다. 여리고성은 철옹성(an impregnable fortress)이었다. 어떤 전쟁 무기로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여리고성은 외벽과 내벽 등 두 겹이었으며, 외벽은 5m 정도 높이의 기초 성벽 위에 두께 2m, 높이 7m의 진흙 벽돌 벽으로 세워졌다. 내벽은 지상으로부터 높이가 14m 정도 되는 둑 위에 다시 높이 솟아오른 내성벽의 구조로 설계된 것으로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그야말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구조를 지닌 이중 성벽이었다
이런 철옹성이 이스라엘 여호수아 군대의 함성소리에 무너져 내렸다. 말도 안되는 승전(勝戰) 기록이다. 아마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릴 때 여리고 백성들의 멘탈(Mental) 또한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요즘 말로 멘붕(meltdown)이다. 이렇듯 무너지는 것도, 지켜지는 것도 다 하나님의 소관(所管, jurisdiction)인 것이다.
다니엘의 경우처럼 사자굴 속에서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낸 사람도 있고, 다니엘을 고소했던 사람들이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는 그들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다니엘의 원수들의 뼈를 부숴뜨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다니엘 6:20-21)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다니엘 6:24)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우리 인생의 안전은 하나님 안에 있다. 우리에게 지체할 이유는 없다. 주님께로 나아가면 된다. 의인은 견고한 망대(a sturdy watchtower)이신 주님께로 달려간다고 말씀한다. 다만 느릿느릿, 가는 둥 마는 둥 하지 말아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로 멸망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달려가라고 말씀하셨다.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왕좌왕(右往左往) 머뭇거리면 안되는 것이다.
(창세기 19:15-17)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구원의 기회는 영원히 열려 있지 않다. 언젠가 문이 닫히는 때가 도래할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해롭게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누가복음 13:29-30)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우리는 그날까지 달려야 한다. 주님 안에 안전함이 있고, 주님 안에 구원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우리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디모데후서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