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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25.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9:14-17)

문학n천국 2021. 11. 19. 16:58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25]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9:14-17)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며 물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로 날짜를 정하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했다. 일명 장로들의 유전(전통)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런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이것은 신앙을 위한 자발적인 행위였다. 율법에 명시된 금식조항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대답하신다. (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금식 자체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금식은 꼭 필요한 것이다. 절제나 근신에 있어 금식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금식에 매여 살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지금 그들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신랑되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금식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텐데 그때에는 금식하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하늘로 돌아가실 때가 곧 그때이다.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상황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린 때이다. 기도해도 울부짖어도 공허함 만이 되돌아 올 그때 우리는 금식하며 부르짖어야 한다.

그러나 금식이 나의 경건을 과시하는 것이 되어선 안된다. 일부러 초췌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금식하는 사람의 모습이 이러하기를 원하신다.
(마6:16-17)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그리고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않아야 함을 말씀하신다.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생베 조각은 옷감 조직이 탄탄한데 이것을 낡은 옷에 붙이면 옷의 약한 부분이 찢어질 수 밖에 없다.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생베 조각은 새 옷에, 낡은 조각은 헌 옷에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부대에 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새 포도주도 마찬가지다. 새 포도주는 발효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부피가 팽창함에 따라 낡은 가죽부대는 찢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진리들을 예수님께서는 왜 반복적으로 말씀하실까? 이것은 아마도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한 지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여전히 율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심지어 예수님께도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그래서 이미 새로운 시대가 임했음으로 예수 안에서 새로운 원칙과 새로운 안목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생베 조각이고 새 포도주이다. 바꾸어말해 예수 복음이다.

이것은 우리 개인에게도 동일하다. 우리의 지난 모든 사고방식이나 삶의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 그 전환점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생베 조각이고, 새 포도주이다. 이제 우리는 율법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율법으로 우리의 삶을 제한하지 말고, 복음으로 삶의 지평을 넓혀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