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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 소금기둥이 되다

문학n천국 2023. 8. 13. 15:44

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성경을 벤치마킹(bench marking) 하라 >

[9] 소금기둥이 되다

기원전 3,123년 6월 29일 새벽 4시 30분 경 수메리아 천문학자들이 하늘에서 아주 이상한 대형 물체를 발견하고 그것을 천체도(celestial map)에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또한 그 시각에 소돔 백성들 중 깨어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소행성(小行星)이 자기 머리 위로 추락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지구 역사상 가장 잔혹했을 아침 풍경이다.

​천문학자 앨런(Alan)박사는 수메리아와 소돔에서 목격된 그 물체는 직경이 1km가 넘는 아톤 소행성(aten asteroid)이었다고 주장한다. 순도 100%의 유황으로 이루어진 그 운석(meteorites)은 폭발시 현대 핵무기의 100배 이상의 위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고대에 가장 번영했던 도시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를 단 1초만에 파괴했을 것이라 말한다. 불바다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장면이다. 다만 이것을 역사적 사실을 확증할 수 있는 자료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저 참고할 자료로 이해해야겠다.

성경의 기록은 같은 시각 소돔에 파송된 하나님의 천사들이 롯(Lot)에게 소돔성에 임할 유황불 재앙에 대해 경고하고 있었다.

(창세기 19:1,13)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그리고 잠시 후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경고하신대로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서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인근이 잿더미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한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뭇잎 하나도 남기지 않으시고 모든 생명체를 불태워 멸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뜻하시는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법을 인간은 제한할 수 없다. 오히려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상상할 뿐이다.

(창세기 19:24-25)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그러나 학자들 중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지진과 화산 폭발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만약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화산이 분출할 때 움푹 패인 웅덩이나 분출된 마그마(magma)가 굳어서 된 화강암이나 지표면에 현무암 등의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지구상의 땅이든지 바다든지 화산폭발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흔적을 남겨 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해 남부 지역에는 화강암이나 현무암 안산암 등 화산 폭발에 따른 암석의 흔적이 없다고 한다. 

또 화산 폭발시 반드시 그 주변이나 인근에는 화산재가 쌓이게 되어 있는데 주변이나 인근에 화산재가 쌓였다는 역사적 자료나 흔적이 없다. 화산재의 경우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위에서 식물이 잘 자라게 되는데 현재 소돔과 고모라의 성터나 주변 지역은 식물이 자라지 못한 불모지(barrens) 환경이 되어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화산 폭발이나 지진에 의한 멸망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았다는 것이 성경의 결론이다. 멸망의 원인은 죄, 특별히 동성애(同性愛)라고 알려져 왔다. 물론 반론도 있다.

(유다서 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로 심판받을 때 살아 남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정 뿐이다. 롯과 그의 두 딸이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아마도 삶의 터전이었던 소돔성이 폭발하며 불길에 휩싸이자 안타까운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본 것 같다.

(창세기 19:17, 23-26)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사람이 소금기둥, 곧 소금덩어리가 되었다는 것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를 위해 응용하거나(apply) 변형시켜선 안되는 것이다. 아내를 잃은 롯의 심정과 엄마를 잃은 두 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분명 살기 위해 함께 소돔성을 탈출했고 이제 눈 앞에 있는 소알성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아내의, 엄마의 단 한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롯의 아내처럼 기회를 흘려 보내는 사람은 어리석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려가며 확인해야 할 세상의 중대사(critical issue)는 없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모습이 있다. 자식을 죽여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머뭇거리거나 항명(抗命)하는 것은 부모로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순종할 게 따로 있지 자식을 죽여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에 능동적으로 순종한다는 것은 부모로서 뭔가 좀 자격이 모자라 보이는 모습같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엄청난 일을 부인 사라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결행(決行)하고 만다. 부인의 입장에선 남편이 망령(亡靈)이 났거나 미친 것이 분명하다. 제 정신으로 어찌 백 세에 얻은 아들을 죽인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듯이 때로는 대혼란 속으로 우리를 밀어넣고 문을 닫아버린다. 우리는 순종이나 거부를 선택해야 한다. 성경은 순종을 우리에게 권면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처음 겪는 일이 아니라 이미 이런 시험을 통과한 본보기가 있다며 아브라함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괜히 대단한 게 아니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할 선택과 결단을 보여 준 사람이 아브라함이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저돌적인(aggressive) 믿음에 당황하셨다. 급히 아브라함을 불러 그의 행위를 중지시키셨다.

(창세기 22:10-11)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감사로 순종하기보다 하나님의 저주가 실제로 임하는지 그것을 확인하려 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소돔성이 유황불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는 모습과 소돔 백성들의 비명소리였다. 그리고 곧 자신의 몸이 소금덩이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롯의 아내는 숨을 거두었다.

롯의 아내는 이름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백성들 중의 하나와 같이 유황불 심판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아마 가족들의 마음엔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가족들을 위한다면 뒤 돌아보지 말았어야 했다. 두 딸을 위해서라도 살아 남았어야 옳았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께도 실패했고 가족들을 위한 일에도 실패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이유는 그 성에서 의인 열 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돔은 죄악의 도성이었다. 롯의 가족만 4명이다. 이들이 모두 의로웠다고 가정했을 때 여섯 명만 전도했다면 멸망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창세기 18: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의인 열 명이 있었다면 소돔의 멸망도 없었고, 롯의 아내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소금기둥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롯의 아내는 뒤만 돌아보지 않았어도 최소한 목숨은 건졌을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성(Nineveh)을 멸망시키기로 정하시고 요나(Jonah) 선지자를 그곳에 파송했을 때 니느웨 왕과 백성들이 모두 회개하며 금식한다. 40일이 지나면 멸망한다는 짧은 메시지에도 온 성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셨던 심판을 거두어 들이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완고해지지 않고 그 말씀에 반응하면 살 길을 언제나 열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요나서 3:4-5)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요나서 3: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니느웨성의 유아 및 미성년들이 12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전체 인구는 60 만명 쯤이었을거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죽은 목숨이었다가 회개함으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요나서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롯의 아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징계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롯의 아내는 홀로 소금기둥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의 본보기로 수천 년을 불명예에 붙잡혀 있다. 오늘 우리는 롯의 아내를 거울 삼아야 하는 것이다.

롯의 아내가 죽고 롯과 그의 두 딸은 동굴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롯과 그의 두 딸들의 부정한 관계 속에서 모압과 암몬 족속이 시작된다. 만약 롯의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부녀지간에 이런 악행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롯의 아내는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자기도 죽고, 부녀지간의 패륜(immorality)에 일조(一助)했다고 하면 너무 억지일까?

(창세기 19: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창세기 19:36-38)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한 사람이 중요하다. 내가 오늘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내 가족에게도 나아가 공동체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말씀을 따라 가는 삶에 곧 생명과 은혜가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accompany) 삶이 인생의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