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 좋은 소비자가 되라
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성경을 벤치마킹(bench marking) 하라 >
[22] 좋은 소비자(consumer)가 되라
(부제 : 하나님은 은혜 생산자, 우리는 은혜 소비자이다)
근래 경험경제(experience economy)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경험경제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각 기업의 제품에 대한 기술 격차가 줄어든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상품에 더 가치를 두게 된다는 경제 개념이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1981~1996년생)의 78%는 '갖고 싶은 물건' 보다 '하고 싶은 경험'에 돈을 지출한다고 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경험 마케팅을 활용하고 있다. SNS에는 쿠킹 클래스(Cooking Class)나 플로리스트(florist) 1일 과정 뿐만 아니라 승마(riding), 캠핑(camping), 낚시(fishing) 등 새로운 체험이나 여행지에서 한 달 살기나 휴양지 호텔에서의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의 인기가 높다.
이같은 체험들은 입소문을 타고 누군가의 경험이 또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낳는 경험의 재생산을 만들어 내고 있다. 참으로 요즘은 값비싼 명품보다 좋은 경험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시대인 것 같다. 가히(indeed) 경험경제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패러다임(paradigm)은 농업경제 - 산업경제 - 서비스경제 - 경험경제로 진화되어 왔다. 이러한 경제 패러다임의 진화로 개인이 경제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 감정, 만족도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기적을 보여 주신 것은 경험 곧 체험을 통해 믿음의 재생산을 독려(encouragement)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확실한 체험이 다른 사람을 믿음으로 초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하나님과 우리는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 consumer)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생산하신(?) 은혜를 우리가 소비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인 프로슈머(Prosumer : producer + consumer)이기도 하다. 우리 또한 영혼 구원에 앞장 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그들의 숫자는 이백 만명으로 추산된다. 남자 장정들만 육십 만명이었으니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아마 이백 만명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통과한 땅은 광야 사막길이었다. 풀 한 포기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뜨거운 모래 사막이다. 이스라엘은 이 광야 길을 사십 년을 걸었다.
광야 길을 걷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식생활이다. 냉장고가 없는 광야에서 음식을 신선하게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백성들에게는 먹거리 자체가 없었다.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먹이신 방법은 땅이 아닌 하늘에서 음식을 공급하시는 방법이었다. 만나(manna)와 메추라기(quail)가 그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발상의 전환이다. 매일 일용할 양식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주시는 방법이었다. 만약 사막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었다면 요단강 물을 모두 끌어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막에 정착하는게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저 걷고 걸어야만 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들의 기본 태도(attitude)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개를 떨구고 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면 창조적인 응답을 경험하게 된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인지시키고자 한다.
만나(manna)는 사십 년 동안 아침마다 백성들의 진(camp) 주변에 내렸다. 만나는 이슬과 함께 내렸는데 이슬이 마르고 난 뒤 작은 알갱이들을 모아서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거나, 굽거나, 삶아서 먹었다. 만나는 광야생활 내내 백성들의 주식(主食, staple food)이었다.
메추라기(quail)는 단백질 보충용으로 저녁에 한 달 동만 내렸다. 매일 저녁 성인의 허리 높이까지 진(camp) 주변 사방 하룻길에 쌓이게 하셨다. 성경에서 하룻길은 보통 32km 쯤 되는 거리이다. 실로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를 바다에서 진 주변으로 보내주신 것이다.
(출애굽기 16:12-1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민수기 11:31-32)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성경본문을 주의깊게 보면 만나(manna)를 내려주시기 전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다고 말씀한다. 삼시 세끼에 대한 걱정으로 불평을 쏟아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불평하지 않았어도 만나는 내렸을 것이다.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에는 여호와 이레(Jehovah-jireh)가 기본 옵션(option)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22:13-14)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하나님은 40년 동안 매일 만나(manna)를 내려주셨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것을 소비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거저 받는 것이니 은혜였다. 결국 만나는 하나님이 생산자이시고, 이스라엘은 소비자인 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도 하나님은 은혜의 생산자로, 우리는 그 은혜의 소비자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예수님께서 오천 명에게, 정확하게는 남자만 계수(counting)하여 오천 명에게 저녁을 먹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만 명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작은 아이의 도시락을 받아 축사하시자(bless) 기적이 일어났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열 두 광주리(large basket)가 차게 거두었다고 말씀한다.
(마태복음 14:15-21)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요한복음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결핍이 있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영적인 기근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우시고 일으켜 세우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적인 방법으로 군중들의 허기(hunger)를 채우셨다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사회사업이기 때문이다. 독지가(篤志家) 혹은 자선가(慈善家)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늘의 창고를 여셨기에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예수님 또한 군중들과의 관계에 있어 생산자가 되셨다. 아무 것도 없는 빈 들에서 기적을 행하시고 그들을 먹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중들은 그 은혜의 소비자가 되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적을 행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사상이나 철학을 신봉하는 삶에서 말씀을 의존하는 삶으로 변화시키시기 위함인 것이다.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어차피 우리는 은혜와 축복의 생산자가 될 수 없다. 다만 은혜와 축복의 소비자로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은혜의 소비자로서 살아가는 길은 분명하다. 주님을 신앙하고 주님께 의탁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주님을 공경하고 찬송하는 것이다. 그래야 좋은 소비자인 것이다.
(이사야 43:18-21)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유대 땅으로 가시는 길에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문둥병자 열 명이 나아와 예수님께 치유를 구했다. 그들은 모두 깨끗함을 얻었다. 그러나 열 명 가운데 한 사람만 찾아와 예수님께 감사했다. 이 한 사람이 은혜의 참 소비자인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이 이와 같아야 한다.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악성 소비자 곧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이다.
(누가복음 17:12-17)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