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산책 29. 뱀 같이 지혜로워라 (마10:16-23)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29] 뱀 같이 지혜로워라 (10:16-2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신다. 이 말씀은 양에게 지극히 불리하겠고 가슴 아픈 결과가 예상된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 이리를 양 가운데로 보내는 상황이라면 이리에게는 축하 받을 일 아니겠는가? 맛있는 고기를 실컷 포식하고 오라고 격려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고로 상황은 우리에게 좋지 않다. 우리는 순한 양이 되어 포식자인 이리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한순간도 긴장을 풀면 안되는, 한순간에 생명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복음을 이리들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리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양은 무사하겠지만, 만약 완강히 거부하면 양의 목숨만 간당간당해진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이것이 곧 양의 생존전략인 것이다.
뱀은 기피동물이다. 일단 생김새가 으시시하다. 다리도 없는 것이 나무도 잘 오른다. 나무 위에 있는 새 집에 들어가 알도 꿀꺽 삼켜 버리고 갓 태어난 아기 새도 삼켜 버린다. 땅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풀 밭을 배회하다 개구리부터 작은 생물들을 사냥한다.
그럼 뱀의 지혜는 무엇일까? 뱀은 신체적인 악조건을 잘 극복해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뱀은 손과 발이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은 어디나 간다. 어떤 동영상을 보니 뱀이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는 영상도 있었다. 가히 놀라울 뿐이다. 두 손과 두 발을 가진 사람도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지 못하는데 뱀은 손발이 없어도 벽에 딱 붙어서 올라간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악조건을 이처럼 극복해내야 하는 것이다. 악조건은 단념하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극복해 내라는 싸인(sign)인 것이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전도자들을 붙잡아 모욕하고 재판정에 넘기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심지어 가족 가운데서도 복음 때문에 서로 원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극복해 내야 할 것들이다.
다음으로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신다. 조류학자들에 의하면 비둘기는 사람을 구별할 줄 안다고 한다. 처음에 자기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사람을 보면 피해 다닌다고 한다. 설령 옷을 바꾸어 입어도 그 사람의 얼굴을 알아 본다고 한다. 비둘기는 다른 여느 새들처럼 새대가리, 닭대가리가 아니라 나름 똑똑한 조류인 것이다.
그럼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요즘은 비둘기들도 기피대상이 되었다. 시내 곳곳에 아무데나 똥을 배설해놓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류독감, 인플루엔자를 옮기는 주범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면서 비둘기들은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생리학적으로 깨끗한 동물이 되기는 이미 틀렸다. 여기에서 순결은 세상의 악한 사람들, 세상의 더러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비둘기처럼 세상의 악을 알아보고 멀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섞여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세상의 어둠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박해를 당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무슨 말을 할지도 고민하지 말라고 하신다. 성령께서 그때 그때 답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때로는 우리의 신앙을 박해하는 사람이 가족이거나 친족, 이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혹 박해가 너무 버겁거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옆 동네로 옮겨가라고 하신다..
우리의 최종목적은 복음전파이다.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 사명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헌신이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한 삶은 복음전도자에게 꼭 필요한 옵션(option)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