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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32.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마11:2-16)

문학n천국 2021. 11. 20. 13:03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32]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11:2-16)

세례요한이 감옥에 수감되었다. 마14장의 내용과 연계해서 생각해 보면 당시 헤롯왕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후처로 삼자 이것을 세례요한이 문제 삼고 공론화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시 헤롯왕은 20년동안 살던 부인과 이혼했다. 헤로디아도 남편 빌립과 이혼했다. 그리고 헤롯과 헤로디아 두 사람이 재혼했다. 두 사람은 하나되기 위해 본 남편, 본 처와 이혼한 것이다. 세례요한의 헤롯왕에 대한 비판은 아주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것이었다. 누가봐도 이들은 불륜으로 시작해 새 가정을 꾸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버니와 제수씨가 재혼한 것이다. 우리 말로 콩가루 집안이다.

이런 비판이 못마땅했던 헤롯왕은 세례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수감했다. 세례요한은 자신에게 시간이 많지 않음을 직감했는지 제자 두 사람을 예수님께 보냈다. 그리고 질문을 했다.
(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이때까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으시는 예수님에게서 메시야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오셨다면 이제 메시야의 권위를 나타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백성 가운데 상당수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대답하신다. (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것은 세상 지도자들이 할 수 없는 구원에 관한 일을 친히 하고 계신다는 말씀이다. 이 대답이 세례요한에게 전해졌을 것이고 세례요한은 자신의 마지막 소임을 생각했을 것이다.

세례요한의 소임은 구약 선지자인 엘리야의 소임과 일치한다. (말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세례요한의 소임은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백성에게로, 백성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의 마음이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세례요한의 소임은 백성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자신은 무대 뒤로 퇴장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 소임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은 사라지고 자신을 비추던 조명이 예수님께로 옮겨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뒤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에게 세례요한에 대해 말씀하신다.
(11:11,1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어릴 적 고향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등잔불로 밤을 밝히던 시절이 있었다. 전기가 없었기에 문화생활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 흔한 드라마 한 편도 볼 수 없었다. 등잔불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당시 팔각형 모양의 성냥통에서 성냥 하나를 꺼내 옆면에 발라져 있던 붉은 인에 긁어야 했다. 그러면 성냥에 불이 붙고 그 불로 등잔 심지에 불을 밝혔다.

성냥은 자기의 몸을 태워 등잔불을 밝힌다. 세례요한의 사명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을 태워 예수님의 앞 길을 밝히는 것이었다. 자기의 불이 시들어 갈수록 예수님의 불은 더욱 타올랐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런 세례요한을 세상에 출생한 모든 사람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신 것이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전에 먼저 이 땅에 보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의 사명은 너무나 명백하다. 세례요한처럼 나를 태워 예수님의 오실 길을 밝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