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산책 45. 그물 비유 (마13:47-50)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45] 그물 비유 (13:47-50)
어부들이 바다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을 때는 양쪽 배 위에 그물 끝을 고정하고 그물은 바다에 내려서 양쪽 배가 일정한 속도로 전진하며 싹쓸이 하는 방법이다. 일명 저인망식 방식이다. 이렇게 해서 잡힌 그물 안에는 어부들이 원하는 물고기도 있고 원하지 않는 물고기도 있다. 그래서 물가에 끌어내어 분류 작업을 해야 한다. 좋은 그릇에 담을 물고기와 내버려야 할 물고기들로 나누는 것이다.
(13:47-48)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어부들이 물고기를 분류하는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자기 생업의 목적에 부합한 물고기만 그릇에 담는다. 아무리 토실토실한 물고기라 해도 목적에 맞지 않으면 버리는 것이다. 오징어잡이 배에서 붕어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분류 작업은 천국 앞에서 천사들이 하는 일이라고 말씀한다.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들만 천국 문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나고 똑똑했더라도 하나님 앞에 의인이 아니면 천국이 그를 토해낼 것이다. 그럼 의인은 누구인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행위로 인한 구분이 아니다. 고백을 전제로 한다.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선한 행위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붙들린 바 되었다면 우리의 고백을 늘 점검해야 한다. 고백한 대로 믿고 있는지, 고백한 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낚시와 그물(투망)은 조금 성격이 다른 것 같다. 낚시는 지렁이를 미끼로 숨죽이며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찌가 움직이면 순간 낚아채야 한다. 만약 밤새도록 찌가 움직이지 않아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반면 투망이나 저인망식은 공격적이다.
그물로 바닥을 훑어 올리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성패를 결정지을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낚시바늘에 금가락지를 끼워 넣고 유혹해서 건져 올리신 게 아니다. 우리 인생의 밑바닥 까지 훑어서 건져 올리신 것이다. 우리 인생의 기대와 상처, 기쁨과 눈물까지 다 건져 올리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저인망식 그물에 의해 주님 앞에 건져 올려진 사람들이다. 사실 건져 올려진 것 자체가 은혜이다. 그러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의인의 반열에 서서 살아왔는지, 악인의 반열에 서서 살아왔는지 엄중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평가에 따라 의인은 천국에 들어가겠고 악인들은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다.
(13:49-50)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풀무불은 손 난로가 아니다. 핫 팩도 아니다. 쇠를 연단하는 용광로 불이다. 악인으로 최종평가를 받게 되면 용광로에 던져지는 것이다. 영원토록 죽지도 않고 뜨거움에 고통 당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던지신 그 그물에 갇힌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의 사람으로 선택된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만약 주님의 그물에 붙들리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신 그물은 억압이 아니라 해방을 위한 것이다. 죄로부터의 해방, 멸망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엡2:8-10)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