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기적을 말하다} 시리즈 4
김상용목사의 {기적을 말하다} 시리즈 4
[4] 사라의 출산 (창21:1-7)
고대 근동세계에서 불임(不妊)은 신의 저주라 여겨지곤 했다. 과거 중국과 우리나라 등 유교 문화권에서도 칠거지악(七去之惡) 이라 해서 아내를 쫓아낼 수 있는 합당한 일곱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들이 없음(無子)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남편들은 그 안에 씨(?)가 없어도 쫓겨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의학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불임의 원인이 여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 있는 원인 때문에 임신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30~40% 나 된다고 알려지고 있다. 아무튼 불임 여성들은 상당한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성경에서 여성의 출산은 축복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 은혜를 누리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불임 여성이었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불임 여성이었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불임 여성이었다.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도 불임이었다.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도 불임 여성이었다.
이외에도 더 많은 불임 여성들이 있다. 그런데 앞에 열거한 여인들 모두 아들들을 출산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셨기 때문이다. 이 불임 여성들은 결과적으로 위대한 아들들을 출산했다. 사라는 이삭을, 리브가는 야곱을, 라헬은 요셉을, 한나는 사무엘을, 엘리사벳은 세례요한을 낳았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누이로서 아브라함의 아내가 되었다. 이같은 근친결혼은 당시 근동지역의 풍습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랜 세월 이들에게 자식이 없었다. 아브라함 99세, 사라 89세가 되기 까지도 아무 징후가 없었다. 아마 꿈 속에서 조차 출산 경험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라는 아브라함 86세 때에 애굽 출신 여종 하갈을 남편과 동침시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얻었다. 아브라함이 더 늙기 전에 어찌하든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아들을 낳은 여종 하갈이 안방마님 행세를 하려 하자 갈등이 생겼다. 이스마엘의 출생은 집안의 평화를 깨뜨리는 결과만 낳았다.
그러다가 아브라함 99세, 사라 89세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셔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눈이 번쩍뜨이는 말씀을 주셨다. 내년 이맘 때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사라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가 책망을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라함 100세, 사라 90세에 아들 이삭이 태어났다. 사라는 이미 경수(생리)가 끊어진 여인이었다. 의학적으로 불임이 확실한데 아들을 낳은 것이다. 수십 년을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요즘 90세의 여성이 아이를 출산했다면 자랑스러움 보다는 남사스럽다며 쉬쉬할 것이다.
(창21: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아브라함과 사라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 특히 사라는 하나님 때문에 웃게 되었다며 행복해 했다.
(창21: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치유하며, 회복시키는 역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능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창18:13-14)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럼, 아브라함과 사라가 체험한 기적은 무엇인가? 이미 죽은 자와 같던 한 여인을 통해 위대한 믿음이 가문이 세워진 것이다. 90세의 노년인 사라가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90세의 할머니가 힘을 얻으면 얼마나 얻겠는가? 그러나 사라는 분명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자연분만을 통해 자식을 낳았다.
(히11:11-12)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사람들은 포기를 생각한다. 답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탈진한 상태에 있을 때 오히려 들어 쓰시길 기뻐하신다. 자기 주장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갈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약 30년 전 어떤 목사님께서 모세의 지팡이에 관해 설교하신 내용이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 있다. 만약 지팡이가 살아 있어서 제 맘대로 꿈틀거리면 지팡이로써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팡이는 온전히 죽은 나무로 만들어야 주인이 원하는 방향을 가리키게 된다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우리의 자아가 온전히 죽지 않고 내 뜻과 내 욕구가 강하게 남아 있으면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우리의 욕구대로 꿈틀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100세, 90세에 낳은 아들은 육신적인 욕구를 따라 얻은 아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큰 비전을 위해 보내주신 아들이었다. 그래서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아브라함은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살리실 것으로 믿은 것이다.
(히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라'
사라를 90세까지 아이 못낳는 여자로 남겨두신 것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오늘 우리도 인내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을 믿고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