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14]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6:25-34)
문명사회가 되기 전 원시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겐 어떤 고민과 염려가 있었을까? 아마 요즘 같은 경쟁사회가 아니었기에 쫓기듯 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냉장과 냉동을 할 수 없었기에 음식에 대한 욕심도 부질 없었으리라. 그날 그날 거두어서 먹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밤 같은 구황작물만 일정량 보관하면 겨울도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냉장 냉동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고 식품 외에도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끼니만 해결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조금 더 가지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고 있다. 가난이 죄악시 되곤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믿는 성도에게 있어서 의식주에 대한 염려는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들보다 더 소중한 목숨에 대해 생각하라고 하신다.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그리고 공중의 새들을 예로 말씀하신다.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들이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는 것은, 굶어 죽기로 작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돌보심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이 사실을 전파하며 모든 염려로부터 자유함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들의 백합화도 마찬가지로 자유함을 누린다고 하신다. (6:28-29)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들의 백합화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하며 즐거워하며 진한 향을 세상에 선물한다. 백합화가 고민하거나 세상과 갈등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백합화는 그 자체로 영화롭다고 말씀하신다. 솔로몬의 영광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도 이렇게 돌보시는 분이시다. 하물며 너희는 어떠하겠는가? 라며 물으신다. 공중의 새나 들풀까지도 깨닫는 지혜를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기 때문이다.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럼 우리의 해야할 바는 무엇인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라고 말씀하신다.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인생의 많은 시간들을 보낼 방법은 분명해졌다. 세상 염려로 보내지 말고 주님의 나라와 의를 나타내는데 인생을 소모하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님의 이름이 이 땅에서 높임을 받게 하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온 세계을 가득 채우며, 온 세상으로 주님의 제자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본분인 것이다.
내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 특별히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은 내일이 반갑지 않을 수 있다. 오늘이 힘겹고 내일은 반갑지 않다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 세상'이다. 이 땅에서는 예수로 인한 행복이며, 다음으로는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신 세계, 곧 천국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하는 대신 오늘 예수로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