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 대화 탐구 시리즈 1 >
《 하늘과 땅의 대화 》
[2] 차별(差別)은 극복하는 것이다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이 링컨(Abraham Lincoln,1809-1865) 대통령이 이끄는 북부의 승리로 끝나고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됐다. 남부지역 350만명의 흑인 노예가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1950년대에 이르러서도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고 있었다. 화장실 세면대도 흑인과 백인이 따로 써야 했으며 백인 전용 음식점에 흑인이 들어갈 수 없었다.
이런 흑백차별을 없애기 위한 흑인 인권운동을 펼친 대표적 인물이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이다. 루터 킹 목사는 1968년 암살 당하기 전까지 비폭력 평화주의를 외쳤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차별을 지우기 위해 온 몸으로 헌신한 사람이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족속의 땅에 가셨다. 수로보니게(Syro-Phenicia)는 신약성경의 두로(Tyre) 땅, 곧 오늘날의 레바논에 속한 이방지역이다.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딸이 귀신들렸는데 고쳐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신다. 예수님께서 누군가의 간청을 이렇게 매몰차게 거절하신 적은 없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간청을 거절하신 표면적인 이유는 여인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7:24-27)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인의 입장에서는 차별당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자기 고향 땅에서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것은 모욕적일 수 있다. 차라리 다른 이유를 말씀했다면 마음이 덜 상했을 것이다. 여인은 심지어 예수님으로부터 개(dog) 취급을 당했다. 전혀 예수님 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개보다 못한 대접도 좋으니 부스러기(crumb) 같은 은혜라도 베풀어 주시길 구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인의 그 믿음을 보시고 실시간으로(in real time) 귀신들린 딸을 치료해 주신다. 여인이 집에 돌아가보니 예수님 말씀처럼 딸이 온전히 치유되어 있었다. 믿음이 상황을 어떻게 역전시키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마태복음 15:27-28)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가복음 7: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했다. 여인에게서 간절함을 보고자 하신 것이다. 간절함은 문제를 극복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녀에게서 그런 간절함을 보셨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여인이 받은 모욕은 순식간에 감사와 찬송이 되었다.
아담(Adam)과 하와(Eve) 부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삶의 터전을 삼은 곳은 에덴 동쪽 땅이었다. 이곳에 정착해 사는 동안 두 아들을 낳게 된다. 그들의 이름은 가인(Cain)과 아벨(Abel)이다. 아마도 아담은 아들들에게 과거 자기들의 실수, 곧 선악과 사건을 교훈했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가르쳤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들은 성장하여 믿음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린다. 가인은 농사꾼으로서 땅의 첫 소산으로, 아벨은 양 치는 사람으로서 양의 첫 새끼를 드렸다.
(창세기 4:3-5)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두 아들의 제물에는 문제될 게 없다. 아직 모세의 율법이 제정되기 오래 전이므로 짐승 혹은 곡물로 제사를 드린다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가인의 제물만 하나님께 거부되었다. 어떤 이는 가인의 제사가 피의 제사가 아니어서 거부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본다. 율법이 제정되기 전이니 제사 방식에 대한 지침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가인의 제물이 거절당한 이유에 대해 죄(罪)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창세기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은 동생 아벨에게 자신의 제물이 거부당한 이유를 전한다. 그리고 가인은 아마도 자신이 농사하는 들로 동생 아벨을 불러내 살해하고 만다. 자신의 제물이 거부된 것에 대한 분노를 동생을 살해함으로 풀어버렸다. 짐작컨대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아벨을 차별하신다고 오해한 듯 하다. 그래서 죄 없는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만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벨에 대해 물으시자 짜증섞인 반응을 보인다.
(창세기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그러나 엄밀히 가인은 차별 당한 게 아니다. 죄를 지적받은 것 뿐이다. 가인(קַיִן)의 이름의 뜻은 '소유, 획득'이다. 하나님께서 가인으로 많은 것을 얻게 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차별하셨다면 많은 소유를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가인은 복을 받은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자신과 아벨을 차별하신다고 오해한 듯하다. 그래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 오히려 자기가 아벨을 역차별(逆差別)하고 말았다.
누구나 세상에서 한번쯤은 차별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때문에 무너지면 안된다. 세상은 약자(弱者)를 차별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의 믿음이 이 차별을 극복하게 한다고 말씀한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누가복음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