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 대화 탐구 시리즈 1 >
《 하늘과 땅의 대화 》
[3] 조금씩 익어가는 인생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2005) 이라는 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또한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1947) 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국화 꽃 한 송이도, 대추 한 알도 거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그렇다. 모든 것은 오랜 시간 여러 자극을 받으며 여물어져 가는 것이다. 시간은 자양분(滋養分)이다. 시간이 중요한 것은 설익지(unripe) 않기 위함이다. 너무 이르면 설익게 된다. 어찌 세상 일 뿐일까?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지혜이다. 기다림은 곧 무르익음(ripen)이다. 결코 낭비가 아니다.
가수 노사연의 <바램>(2015)이라는 노래에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는 노랫말이 있다. 그렇다. 이 얼마나 훈훈한 삶의 해석인가? 조급한 마음과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아주 좋은 글귀라고 생각한다. 삶이란 것은 세월에 맞서지 않고 함께 유유히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숙(圓熟)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서야 아들 이삭을 낳았다. 그의 아내 사라는 90세였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몇 살에 결혼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아들 이삭이 40세에 결혼한 것을 아브라함에게 적용한다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거의 60년 가까이 자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많은 노력을 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스스로 포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도 그들 안에서 어느새 희미해져 갔다.
(창세기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은 결국 아들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자기의 늙은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고자 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교통정리를 하려는 것이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흔한 풍습이었다고 한다.
(창세기 15: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고향을 떠나올 때 첫 번째 약속을 받은지 10년쯤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된다. 나름 하나님의 약속을 해석한 결과이다. 여종을 통해 아들을 낳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한 듯하다. 아마도 노년의 아브라함 부부가 생각해 낸 나름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창세기 15:4-5)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러나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 수 없었다. 이스마엘은 여주인의 몸종(lady's maid)의 자식이라는 한계(限界) 때문이다. 결국 이삭이 태어난 다음 해 곧 이스마엘이 15세 쯤 되었을 때 이들 모자는 집에서 쫓겨난다.
(창세기 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이삭의 출생으로 가정의 질서가 새롭게 정립되었다. 종 엘리에셀이 상속자 후보에서 탈락하고, 이스마엘은 강제로 독립시켜 내보내졌다. 이삭을 중심으로 질서가 재편(再編)된 것이다. 엄밀하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 것이다.
나는 이삭이 출생하기까지 수십 년 동안 아브라함 부부가 겪었을 아픔과 혼란을 생각해 본다. 그들을 오랜 시간 힘들게 했던 자식 문제는 그들 인생에 마이너스였을까? 득(得)은 없고 실(失)만 남았을까? 나는 감히 생각해 본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큰 민족의 시작이 과연 순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삭이 아무리 약속의 자녀, 축복의 자녀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거저 주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많은 밤을 지새우게 하시고, 오랜 세월 갈망하게 하시고, 많은 혼란을 겪게 하셨다. 이삭은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할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처럼 하룻밤 남녀간의 정(情)으로 쉽게 태어난 인물을 세상의 중심으로 세우실 수는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무엘 선지자의 출생도 그러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건국(建國)을 주도한 인물이다. 첫 번째 왕 사울과 두 번째 왕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은 자가 사무엘이었다. 이 두 왕의 통치 기간은 80(40+40)년이었다. 불임 여인이었던 한나가 이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였다.
대추 한 알도, 국화 꽃 한 송이도 수많은 밤을 지나며 비와 바람과 천둥을 온 몸으로 감내(堪耐)한 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의 기대(期待)가 조금 더디 이루어진다고 낙망(落望)할 필요는 없겠다. 우리 앞에 찬란하게 펼쳐질 그 날을 그리며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다.
(잠언 13: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