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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문학n천국 2024. 3. 26. 08:47

김상용목사의 < 대화 탐구 시리즈 1 >
       《 하늘과 땅의 대화 》

[5] 내가 틀릴 수도 있다 (I may be wrong)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Bjorn Natthiko Lindeblad)가 쓴 <내가 틀릴 수도 있다>(2022)는 제목의 책이 있다. 그는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했고 초고속으로 승진하여 26세에 기업 임원이 되었지만 홀연히 사직서(辭職書)를 내고 밀림으로 들어갔다. 그는 태국(Thailand)의 밀림 숲속 사원에 귀의(歸依)하여 '나티코'라는 법명(法名)을 받고 스님이 되어 17년간 수행한다.

오랜 시간 승려로서 살던 그는 46세에 사원을 떠나 다시 세상에 나온다. 그 후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명상(瞑想, meditation)을 가르치며 산다. 혼란스러운 일상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사는 법을 사람들에게 전한다. 그러던 중 2018년 그는 루게릭병(Lou Gehrig's disease)을 진단받고 급격히 몸의 기능을 잃어간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5년이라는 진단이 내려진다. 그리고  그는 2022년 1월에 만 60세로 세상을 떠난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인간 관계에서 갈등이 싹 트려고 할 때  혹은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다음과 같은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 반복하라고 가르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참으로 단순 명쾌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진실이다. 그는 이것이 갈등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확신한 듯하다. 그렇다. 내게도 오류(error)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말은 항상 옳다고 주장하다 보니 다툼과 분열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사람 앞에서 항상 겸손하기를 힘쓰라' 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불교계의 큰 인물이었던 성철 큰 스님이 있다. 그는 81세에 입적(入寂)하기까지 한국 불교계의 가장 유명한 고승(高僧)이었다. 그의 본명은 이영주(李英柱, 1912-1993)이다. 그에게는 딸 불필스님이 있다. 성철스님은 결혼생활 중 20대 중반에 출가했기 때문이다. 불필스님은 성철스님에게 유일한 혈육이었다.

성철스님은 임종(臨終)을 앞 둔 어느 날 먼 산 봉우리에 걸려 있는 이글이글 불타는 석양을 바라보며 자기가 가야 할 아비(阿鼻)의 불지옥을 생각한다. 그리고 회한(悔恨)으로 몸부림치면서 천추(千秋)의 한(恨)을 토로(吐露)하듯이 유언(遺言)을 남긴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불필스님)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음을 앞둔 임종시에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서천에 속이고 동토에 기만하였네, 도적이여 도적이여, 저 한없이 어리석은 남여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석가와 미타는 뜨거운 구리 쇳물을 마시고, 가섬과 아난은 무쇠를 먹는다...'.

물론 불교계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자료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성철스님의 다비식(茶毘式, cremation)은 TV에서 생중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TV를 통해 대단한 한 인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았다. 그리고 성철스님은 마지막 가는 길에 '결국 내가 틀렸다' 고 그렇게 선언하고 간 것이다.

성경에도 이런 고백을 한 인물이 있다. 사울 곧 바울(paul)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아 가두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던 사람이다. 바울은 초대교회를 파괴하는데 가장 앞장 섰던 인물이었다. 그는 유대교 열성당원이었다. 예수님 승천하신 후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있어 바울은 저승사자(監齋使者)같은 존재였다.

(사도행전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리고 바울은 더 나아가 유대 땅을 넘어 이방지역으로 흩어진 예수 믿는 유대인들을 붙잡아 오기 위해 다메섹으로 갔다. 다메섹은 지금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Damascus)다.

(사도행전 9: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의 악행을 더 이상 간과하지 않으셨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에게 친히 나타나셨다.

(사도행전 9:3-5)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 장면이 바울 인생의 터닝포인트(Turning Point)이다. 바울은 애초에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칭한 종교 사기꾼으로 판단했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이후 그는 예수쟁이로 거듭났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임을 알게 된 것이다. 바울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그는 사흘 동안 식음(食飮)을 전폐(全廢)했다.

(사도행전 9:8-9)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유대교인으로서의 바울은 딱 거기까지였다. 사흘 후 바울은 예수 전도자로 새롭게 태어났다. 유대교인에서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 바울의 이런 변화는 많은 유대인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유대인들의 신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렇듯 초대교회는 시련 속에서 피어났다. 바울은 신약성경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자가 되었다. 바울을 얘기하지 않고는 초대교회를 설명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도행전 9:20-22)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이런 바울도 자신의 과오를 고백한다. 자신이 틀렸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예수와 기독교를 핍박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큰 죄인이라고 고백한다.

(디모데전서 1:13, 15)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인생의 가장 큰 오류(誤謬)는 예수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처사(處事)이다. 우리가 인생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위한 최고의 배려(配慮)이다. 흔히 말하는 인생대박은 예수 안에 있다. 참 행복도, 건강도, 물질도, 형통함도, 영원한 생명도 다 예수 안에 있다. 예수 안에서 후회할 인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