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한 문장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Live with one sentence a day) }
(19) 인생은 해석이다 ( Life is an interpretation)
남미(南美)의 아르헨티나(Argentina)와 칠레(Chile)는 국경(國境)을 맞대고 있다. 양국(兩國)은 안데스(Andes, 해발6,961m)라는 큰 산맥을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서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04년 국경 분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평화롭게 해결되었고 이것을 기념하여 양국의 국경이 되는 해발 3,832m의 우스파야타 산 언덕에 예수 그리스도의 동상을 세웠다.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국가들이다.
그런데 이 예수님 동상으로 인하여 오히려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이유는 예수님 동상이 칠레에는 등을 돌리고 있고 아르헨티나를 바라보고 팔을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칠레 국민들의 감정이 상했다. “왜 우리 칠레에 등을 돌리고 있게 만든 것이냐? 왜 아르헨티나만 축복하는 것이냐?” 하면서 소란스러웠다. 양국의 평화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동상인데 오히려 그 동상때문에 전쟁이 벌어질 위태로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때 칠레의 한 신문사 기자가 신문에 이런 글을 실었다.
“예수님의 얼굴이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서 계신 이유는 아르헨티나가 칠레보다 더 예수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칠레인의 고조된 감정을 가라앉힐 만큼 큰 감동을 주었다. 신문 기자의 한 문장의 글로 인하여 양국 사이에 갈등도 사라졌다. 이것은 예수님 동상의 모양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동상을 보는 시각과 해석이 달라진 것 뿐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그의 책 <프레임>에서 프레임(Frame)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는 사람들이 두 가지 프레임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하나는 ‘접근 프레임’이고 다른 하나는 ‘회피 프레임’이다.
그는 접근 프레임은 성공하는 사람이 사용하고, 반대로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회피 프레임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다가 고난을 당하면, 오히려 이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된다는 생각이 접근 프레임이다.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앞에 도착했을 때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파송했다. 40일 후 돌아온 정탐꾼 중 두 명은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보고했지만, 나머지 열 명은 패배를 예언했다. 그 두 명, 곧 여호수아와 갈렙은 접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이고, 나머지 열명은 회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민수기 13: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민수기 13:30-31)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요셉의 경우도 그러하다. 열 명의 이복 형들에 의해 강제로 붙들려 노예로 팔려갔다. 형제간 인신매매 사건이다. 요셉은 13년의 노예생활 후에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9년이 더 흘러 39세 때 그 형들이 요셉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 노예로 팔려 갈 당시 17세의 소년이었던 요셉은 22년이 흘러 다시 형들을 만났을 때 놀랍게도 형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애굽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으니 형들에게 복수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데 말이다.
(창세기 45:5-7)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요셉에게 형들은 핏줄이 아닌 원수같은 존재들이다. 13년의 노예생활을 돌아보면 피가 거꾸로 솟구칠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보통 사람들의 상식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들이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했다고 고백한다. 접근 프레임이다. 이런 사람들이 성공을 거머쥔다는 것이다. 열 명의 정탐꾼들처럼 '우린 안될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은 회피 프레임이다. 이들은 실패한 삶을 살게 된다.
수제자 베드로도 많은 고난을 겪은 후 우리에게 고난을 즐거워하라고 권면한다.
(베드로전서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미국의 척 스윈돌(Chuck Swindoll, 89세) 목사의 말이다.
'우리 인생은 사건 10%와 그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반응 90%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인생은 사건 그 자체보다는 우리 삶에 일어난 사건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저주하지 않으신다'. 이 전제(前提, premise)가 믿어지면 우리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게 된다. 삶의 모든 것이 복으로 연결된다. 삶은 나의 해석대로 되어지기 때문이다.
(이사야 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