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한 문장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Live with one sentence a day) }
(20) 진심은 길을 잃지 않는다
사마천의 < 사기(史記) >에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복숭아와 오얏(자두)은 말을 하지 않아도 나무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 는 뜻이다.
다시말해,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꽃이 예쁘고 열매가 맛이 좋아서 찾는 이가 많으므로 그 나무 아래에 자연스럽게 길이 생기는 것처럼, 덕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는 뜻이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가 쓴 명작 <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의 주인공은 '장발장(Jean Valjean)'이다. 그는 배고픔에 빵 한 개를 훔친 죄로 무려 20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한다. 시간이 지나 출소하지만 전과자인 그를 환영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갈 곳도 없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어느 교회의 목사님 집이다. 목사님은 그가 전과자인줄 알면서도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잘 대접하고 재워 준다. 다음날 깨어난 장발장은 또 다시 끼니를 걱정하다가 그만 그 목사님 댁에 있는 값진 은(銀) 그릇을 훔쳐서 달아난다.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이 붙잡고 물어보자, 그는 '목사님이 주셔서 가지고 나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래도 미심쩍었던 경찰은 그를 끌고 목사님 집까지 찾아가 목사님과 대질 신문을 한다. 그러자 장발장을 본 목사님은 뜻밖에 '왜 은 그릇만 가져갔소? 은 촛대도 내가 그대에게 주었었는데...'
예상치 못한 목사님의 변호와 사랑에 장발장의 마음은 봄에 눈 녹듯 하여 그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한 도시의 시장이 되어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되는 인물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진심은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청파>의 대표변호사였던 故이재만 변호사(1952-2021)가 남긴 <진심은 길을 잃지 않는다 (2014) >는 책이 있다. 이재만 변호사는 주병진, 권영찬, 송일국, 엄앵란 등 유명 연예인들 사건의 승소를 이끌어 낸 스타 변호사였는데, 책에서 그는 인간관계의 미로(迷路)를 헤쳐나갈 수 있는 비밀의 열쇠는 바로 '진심 네트워킹'에 있다고 말한다.
'진심 네트워킹'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태도를 갖는 것을 말한다. 이 진심(眞心) 네트워킹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공감할만한 브랜드 메시지에서 기업의 진심을 느낀다. 예를들어 '진심이 짓습니다' 라는 'e-편한세상' 아파트의 광고 카피가 호응을 얻었던 것도 광고에서 소비자들이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진심은 언제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 하나님께 진심(眞心)이었던 한 인물이 소개되고 있다. 바로 에디오피아(Ethiopia) 여왕 간다게(Candace)의 국고를 맡은 내시이다. 내시라고 해서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신체 주요부위의 쌍방울을 잃은 내시와는 전혀 다르다. 사극(史劇)을 보면 우리나라도 고려시대까지는 내시들을 거세(去勢)하지 않았고 수염도 길렀었다. 내시는 왕(王)의 침실을 지키는 수하(手下)를 말한다.
이 내시는 에디오피아 여왕의 모든 재정을 맡고 있던 높은 관직에 있는 왕의 참모이다. 그는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배드리러 왔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학자들에 의하면 그 거리는 약 1,500km라고 한다. 마차를 타고 한 달 보름 쯤 소요되는 먼 거리다. 왕복 석 달이 소요되는 예배의 여정(旅程)이다. 예배에 진심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길이다.
(사도행전 8:26-28)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하나님께서 이 내시의 진심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그 멀고 험난한 길을 자청한 것은 믿음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전도자 빌립을 보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시고 세례를 베풀게 하셨다.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신 것이다. 이방인 가운데 이만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사도행전 8:35, 38)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우리 시대에 인간관계에서 진심(眞心)인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시처럼 하나님께 진심인 사람이 필요하다.
사도요한의 제자이자, 서머나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Polycarp, A.D.80-165)의 순교에 관한 이야기다. 총독 게르마니쿠스(Germanicus)는 폴리갑에게 예수를 부인하고 목숨을 보존하라는 요구를 한다. 그러자 폴리갑은 그의 개종 요구에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86년 동안 그분(예수)을 섬겨 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가 있겠소'
결국 폴리갑은 주님을 배신하지 않았고 화형을 당했다. 이처럼 초대교회 시절에 '예수는 주님이시다' 라고 고백하는 일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다. 예수 믿는 자의 진심이란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한다.
진심은 참된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다. 유혹도 핍박도 견디게 한다. 이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가식(假飾)은 버려야 한다. 진심은 우리로 길을 잃지 않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