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한 문장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Live with one sentence a day) }
(29) 인생은 낙장불입(落張不入, No turning back)이다
약 3,000여 년 전 중국 주(周, B.C.1046-256)나라의 강태공(姜太公)의 부인이었던 마씨는 그녀의 나이 68세 되던 해 가난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떠난다. 남편 강태공(태공망)이 나이 팔십이 되도록 한가롭게 낚시만 즐겼기 때문이다.
그 뒤 강태공(姜太公)은 주 문왕(周 文王)을 도와 역성혁명(易姓革命: 신하가 왕을 바꾸는 일)에 성공하여 금의환향(錦衣還鄕) 한다.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고려(高麗, 918-1392)를 무너뜨리고 조선(朝鮮, 1392-1910)을 건국한 것이 역성혁명이다. 이렇게 강태공이 나라의 재상(宰相)이 되어 돌아오자 마씨는 강태공을 찾아온다.
그리고 마씨는 강태공에게 자신을 다시 부인으로 받아달라고 청한다. 이에 강태공은 그릇에 담긴 물을 엎지른 후 "이 물을 주워 담을 수 있으면 그대 곁으로 돌아가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It's no use crying over spilt milk).
명절마다 많은 가정에 손님처럼 등장하는 화투에는 낙장불입(落張不入)이라는 규칙이 있다. '판에 한번 내어 놓은 패는 물리기 위해 다시 집어 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화투는 매번 후회없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화투(花鬪)는 '꽃들의 싸움'이라는 뜻이다. 사행성(射倖性) 놀이임에도 꽤 그럴듯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매화, 벚꽃, 난초, 모란, 국화 등 12가지 꽃이 1평 남짓의 담요 위에서 벌이는 전쟁이 화투다.
이 화투 놀이가 만들어 낸 격언들이 있다. <비풍초똥팔삼>: 살다 보면 뭔가를 포기해야 할 때가 온다. 그럴 땐 버리는 것도 우선순위를 잘 정하라. <광 하나는 가지고 살아라>: 누구라도 한 번쯤 실패를 맛본다. 그럴 때일수록 마지막에 내놓을 카드는 꼭 쥐고 있어라. <낙장불입>: 한 번의 실수가 인생에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하라. <밤일낮장>: 인생에는 밤에 해야 할 일과 낮에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 <삼고초려>: ‘쓰리고’를 부를 때는 상대의 ‘초단’을 조심해야 한다. <못 먹어도 고>: 이판사판, 실패 가능성이 있더라도 강행한다. <유비무환>: '비’ 를 들고 있으면 ‘피박’ 염려는 없다. 이렇듯 화투 48장에 나름 인생철학을 담아 놓았다.
우리네 인생 또한 낙장불입(落張不入)이다. 실수나 선택을 돌이킬 수 없다. 선택과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다. 우리가 삶에 대해 신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삶은 재미가 아니다. 흥미로운 게임도 아니다. 몸부림 쳐 살아내야 하는 과제 같은 것이다.
<호시우보(虎視牛步)>란 말이 있다.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는 것처럼 날카롭게 상황을 판단하되 마음은 조급하지 않으며, 황소처럼 우직하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목표를 향해 늘 같은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다'는 뜻이다. 곧 예리한 판단력과 신중한 행보를 호랑이와 소의 행동에 빗대어 한 말이다.
다음은 서정주(徐廷柱,1915-2000) 시인의 <국화 옆에서>(1947) 라는 제목의 시(詩)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 꽃 한 송이가 피는 과정에도 이렇게 깊은 진리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인생이랴? 인생에도 천둥, 먹구름, 무서리, 울음이 있다. 우리가 인생을 진지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다. 매번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다.
마태복음 22장에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의 비유>를 말슴하셨다. 어느 임금이 아들의 혼인잔치에 몇몇 백성들을 초대했다. 하지만 초대받은 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핑계를 대며 참석하지 않았다. 화가 난 임금은 종들을 사거리에 보내 거리를 전전하는(展轉하는,drifter) 이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했다는 내용이다.
(마태복음 22:2-10)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잔치에 핑계를 대며 참석하지 않은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군대를 보내 진멸했다고 말씀한다. 그들은 살인한 자라고 하신다. 아마도 백성들을 학대하고 핍박했던 상위 계층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들의 업무가 바쁜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의 우선순위를 간과해선 안된다. 자기 사업보다 더 중요한 게 왕의 명령이다. 자기 장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왕을 섬기는 일이다. 결코 혼동해서는 안된다.
한 번 뿐인 인생이다. 인생은 내 맘대로 수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매우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낙장불입(落張不入)이다. 지옥 문 앞에서 다시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겠다는 상상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내일 하나님을 찾는 건 늦은 선택일 수도 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인생 최고의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다. 인생의 성공과 영생천국은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