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한 문장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Live with one sentence a day) }
(30) 매미, 죽기까지 울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BC 544--484)는 "당신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You cannot step twice into the same rivers)"고 했다. 모든 것이 시시각각(時時刻刻) 변하기 때문이다 .
철학자의 이 말을 들은 그의 채무자 중의 한 사람이 그의 말을 인용하여 빚을 갚지 않은 일이 있다고 전해진다. 채무자의 논리에 따르면 과거에 돈을 빌린 사람이나 돈을 빌려 준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다. 철학자가 자기 논리에 당한 일화이다.
다음은 안도현(安度昡,1961~) 시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시(詩)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여름을 알리는 곤충 매미(cicada)의 일생을 알면 애처로움 그 자체이다. 매미는 보통 5~6년, 길게는 17년 가량을 산다. 하지만 날개를 가진 모습으로는 짧게는 7일, 길게는 한 달 밖에 살지 못한다. 매미는 나무 껍질이나 틈에 알을 낳는다. 알 상태로 추운 겨울을 난 다음 해의 여름에 깨어나거나, 10~40일만에 애벌레가 된다. 그 뒤 땅속으로 40cm쯤 들어가 평균 7년 정도 지낸다. 그리고 나무뿌리의 즙을 빨아먹으며 4~5번 허물을 벗은 뒤에야 하얀색의 아기 매미가 된다. 성충이 된 다음에는 길어야 한 달 가량을 사는데, 이때 수컷은 짝짓기를 하고 죽고, 암컷은 알을 낳은 뒤 일생을 마감한다.
매미는 목으로 울지 않는다. 발음기(진동막)로 불리는 배 아래쪽 V자 모양의 근육을 움직여서 소리를 낸다. 초당 300번 이상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진동막을 흔든다. 매미는 몸집이 클수록 울음소리도 크다. 크게 울수록 암컷에게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적으로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매미의 울음소리 주파수가 사람의 귀에 가장 잘 들리는 6㎑(킬로헤르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미는 수컷만 운다. 소리낼 수 있는 기관이 없는 암컷은 ‘벙어리 매미’로 불린다. 울음소리를 내는 가장 큰 이유는 암컷과 짝짓기를 하기 위함이다. 또한 매미 소리가 처절할 만큼 요란한 것은 죽을 때가 다가왔다는 뜻이다. 죽을 때를 아는 미물(微物)이다.
여름철에 산 속에 앉아 있노라면 매미가 열심히 울어댄다. 허기지게 뭐하러 울어대나 싶다. 그러나 매미의 삶이 길어야 한 달인 것을 알게 되면 같이 울어주고픈 맘이 든다. 짧게는 며칠 후에 배를 뒤집어 까고 땅바닥에서 운명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평균 2주 정도 살다 갈거면 그냥 조용히 쉬었다 가도 될텐데 왜 남은 시간을 죽어라 울다 갈까? 이유는 하나다. 죽기 전 번식을 하기 위해서다. 이 땅에 후손을 남기기 위함이다. 수컷의 울음소리는 암컷을 부르고 그들은 불새처럼 뜨겁게 사랑하고 죽어가는 것이다. 매미의 지상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명은 번식이다. 매미는 지상에서 채 한 달도 못 살지만 자기 사명을 다하고 가려는 것이다.
이렇듯 매미가 자기 사명을 다하고 가듯이 우리 또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인생 80년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오락만 즐기다 가는 삶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2주 남짓 사는 곤충도 사명을 이루고 가는데 오늘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독일의 심리치료사이자 작가인 롤프 메르클레(Rolf Merkle)는 이렇게 말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The one who was born a genius can't win against the one who tries, and the one who tries can't win against the one who enjoys)
이 글의 제목을 매미가 울다로 표현했지만 사실은 '매미가 울다'가 아닌 '노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짝을 찾기 위해 소리내는 것이기에 통곡은 아닐 것이다. 노래소리로 짝을 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우리의 사명 또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도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그 분의 성호를 찬양해야 한다.
(로마서 5:10-11)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서두에 말한대로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기에, 오늘 감사하고, 오늘 찬양해야 한다. 감사와 찬양을 묵혀두면(keep idle) 안된다. 감사와 찬양이 곧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시편의 제1 저자이자, 고난의 사람이었던 다윗왕은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도 감사와 찬양을 잊지 않았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감사를 결단하자.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자.
(시편 150:1-6)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