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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문학n천국 2024. 9. 21. 23:11

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한 문장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Live with one sentence a day) }

(40)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By changing nothing, nothing changes)

미국 작가 스펜서 존슨(Spencer Johnson, 1938~2017)의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 (Who Moved My Cheese?)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스펜서 존슨은 작가가 되기 전에는 의사였다. 의사로서 환자들이 똑같은 질병으로 병원을 다시 찾는 것을 보고 "질병은 영혼에서 무언가 결여되어 생기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인간의 내면을 고치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의사에서 작가로 전향(Conversion)한다. 그의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2,800만 부가 판매되었다.

책의 등장인물은 생쥐 두 마리와 인간 꼬마 두 명이다. 생쥐 이름은 스니프(Sniff)와 스커리(Scurry)이고, 꼬마 인간은 헴(Hem)과 허(Haw)이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맛있는 치즈를 찾아 다니는 것이었다. 미로(迷路) 속을 열심히 뛰어다닌 끝에 그들은 치즈가 가득 찬 창고 'C'를 발견하고 매일 그곳에 가서 좋아하는 치즈를 실컷 먹었다.

그리고 생쥐들은 치즈 창고를 발견한 후에도 매일 아침 창고에 가서 어제와 다른 변화가 있는지 확인했다. 반면 인간 꼬마들은 창고의 치즈가 평생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창고의 치즈가 사라졌다. 그러나 생쥐들은 놀라지 않았다. 창고의 치즈가 조금씩 줄고 있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생쥐들은 다시 미로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섰고, 끝내 새로운 치즈 창고 'N'을 발견했다.

반면 인간 꼬마들은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서는 대신, 누군가 치즈를 다시 창고에 가져다 놓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사라진 치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꼬마 헴(Hem)과 허(Haw)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둘은 헤어졌다. 헴은 치즈를 계속 기다리기로 한 반면, 허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났다. 그리고 허는 미로 속을 헤맨 끝에 마침내 새 치즈 창고 'N'을 발견한다. 생쥐들은 그곳에 먼저 와 있었다.

마침내 꼬마 허(Haw)는 깨닫게 된다. "변화를 예상하고 신속히 적응해야 한다. 두려움을 떨치고 새 치즈를 찾아 떠나야 산다. 사라진 치즈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릴수록 새 치즈는 더 가까워진다" 는 교훈이다.

노벨상 수상자 60명 이상을 배출한 미국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의 실험실에서 간단한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개구리 한 마리를 차가운 물이 담긴 비커(Beaker)에 넣었다. 분젠 버너(Bunsen Burner)위에 그 비커를 놓고 1초에 0.017도씩 물이 데워지도록 불꽃을 조절해 놓았다. 그렇게 서서히 물이 데워졌으나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온도는 계속 올라가는데도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갔다. 변화에 대처하지 않아 죽음을 맞게 된 개구리의 이야기이다

상어(Shark)는 바다의 제왕이다. 그러나 상어를 작은 수족관에 넣어두면 2∼3인치 정도 밖에 자라지 않는다. 더 큰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6∼10인치까지 자란다. 그런데 바다에 방류하면 2-3미터의 크기. 곧 100인치의 크기로 자란다.  상어를 바다의 제왕이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변화’에 대한 적응(adaptation)인 것이다.

변화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변화에 능동적인 사람이 기회를 선점하게(preoccupy) 된다. 변화를 원하지 않거나 새로운 상황에 주목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되는(eliminate)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능동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예레미야 12: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변화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변화를 거부한다. 사람들은 메모지가 있으면 펜이 없다고 불평하고, 펜이 있으면 메모지가 없음을 불평한다. 그리고 둘 다 있으면 메모할 내용이 없다고 불평한다. 변화 대신에 불평을 가까이 한다. 하지만 변화해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Save your own skin )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각자가 스스로 제 살 길을 찾는다" 는 뜻이다. 조선시대 때 대기근이나 전쟁 등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백성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말이다.

신앙도 '각자도생'이다.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내 스스로 방향과 속도를 설정해야 한다. 또한 그 방향과 속도는 하나님께 맞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안에 있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

베드로는 본래 유대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오직 유대인에게만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있다고 믿던 사람이었다. 그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이런 완고한 생각을 깨뜨리셨다. 하나님께서 그의 생각을 수정하셨다.

어느날 로마군대의 백부장이 그의 집으로 베드로를 초청해 복음을 듣고자 했다. 본래의 베드로라면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이방인에 대한 차별적인 생각을 고치셨기에 그들 앞에 가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도행전 10:28, 34-35)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베드로의 생각이 수정되면서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교회적인 논의가 본격화 된다. 그리고 사도행전 15장에는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이방인의 구원에 관한 문제가 논의되고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결의가 있었다.

(사도행전 15:19-20)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베드로가 변화됨으로써 이방인에게 합법적인 구원의 길이 열렸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베드로가 변화됨으로써 자발적으로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새롭게 설정하게 하셨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By changing nothing, nothing changes)는사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