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한 문장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Live with one sentence a day) }
(47) 여기저기 안 아픈데 없지만 그렇다고 죽는 건 아냐
일본의 여류 소설가 소노 아야코(曾野綾子, Ayako Sono, 1931~)의 < 여기저기 안 아픈데 없지만 그렇다고 죽는 건 아냐 >(2024) 는 제목의 수필집이 있다. 올 해 93세인 노(老)작가의 신체에 관한 에세이다.
작가는 80세 쯤 되었을 때 쇼그렌 증후군(Sjögren's syndrome), 곧 비정상적인 면역체계가 활성화되면서 침샘, 눈물샘 등의 외분비샘에 림프구(lymphocyte)가 침범해 그 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을 앓았다. 의사는 그녀에게 “이 병은 약도 없고 낫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것으로 죽지도 않는다”고 말해 준다.
작가는 이 진단을 받고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통증과 불편이 뒤따랐지만, 아무튼 죽지 않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병은 불편하고 아프다. 그러나 소노 아야코와 같이 자신의 병을 피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내용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인간의 생애는 아무렇지도 않은 나날의 연속이다. 그러니 특별히 용감할 일도, 지적으로 남들보다 우수하다고 떠벌릴 일도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살았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은 충실한 하루를 보낸 것이다. 만족스러운 일생이란 충실한 하루하루가 쌓인 것이다"
그렇다. 복된 인생이란 자신의 연약함 중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축복인 것을 감사하면서 말이다.
다음은 정호승(鄭浩承, 1950~) 시인의 < 빈손의 의미 > 라는 제목의 시다.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 놓거나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한
남의 손을 잡을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동안 내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그렇다. 내 손에 무언가를 움켜 쥐고 다른 이의 손을 잡을 수 없다. 내 몸이 아파보지 않고는 건강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지나친 축복은 오히려 이웃을 돌아보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평생에 다 쓸 수 없는 거대한 재산보다는 자칫하면 한 방에 다 날릴 수 있는 만큼의 축복이 알맞다고 본다. 그래야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고,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노 아야코 작가처럼 죽지 않을 병으로인해 적당히 긴장하며, 자신과 이웃에 대한 관심도 적당히 유지하며, 삶이 느슨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곧, 건전한 긴장(tension)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나친 긴장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기에 적당한, 건전한 긴장 상태가 필요한 것이다. 긴장이나 불안이 너무 지나치면 그 '불안에 질식할 수(choking under pressure)'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긴장감(tension)의 긍정적 효과를 증명한 <메기이론(Catfish effect)>이 있다. 두 개의 어항 중 한 쪽 어항에는 금붕어만 넣고, 다른 한 쪽 어항에는 금붕어 외에 메기 새끼 한 마리를 넣고 일정 기간 금붕어의 발육 상태를 조사했다. 실험 기간이 종료되자 각각의 어항에서 금붕어를 꺼내어 그들의 발육상태를 확인해 보았는데, 발육 상태를 보니 혼자 있었던 금붕어는 정상 이상으로 살이 찐 상태를 보이면서 느린 움직임을 보였다. 반면 메기와 같이 있었던 금붕어는 반대로 살도 적당히 찐 상태에서 피부가 탄력적이었고 움직임도 매우 생동감이 있었다. 다시말해 메기로부터의 간헐적 위협 속에서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자란 금붕어가 훨씬 더 건강했던 것이다.
신약성경 인물 가운데 탑티어(top tier ; 최상급)라 할 수 있는 이는 바울 사도(Apostle Paul)이다. 그는 모든 신학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자,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전도자이다. 그런 그에게 치명적인 건강 약점이 있었는데 바로 간질병(epilepsy, 뇌전증)이다. 혹은 안질(眼疾,결막염)이라는 주장도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 이 병을 치유해 주시길 기도했다.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고린도후서 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아마도 바울의 간질병(뇌전증), 혹 안질(결막염)은 중증이었던 것 같다. 바울 스스로 자신의 병을 '사탄의 사자(a messenger of Satan)' 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탄이 자신을 저주한 것처럼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들은 바울은 그의 생각을 수정한다. 자신의 병을 저주가 아닌 축복의 도구로 믿게 된다. 이 병때문에 영육간에 느슨해지지 않고, 이 병이 가져다 준 영적 긴장감이 사역의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삶을 아프게 하거나 피곤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 원망과 불평 대신에 적당한 삶의 긴장감을 주심에 감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치유와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요셉은 자기를 노예로 팔아버린 이복 형들을 22년 만에 만난 뒤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원망하는 대신 오히려 감사한 일로 해석한다. 이것이 탑티어(top tier ; 최상위, 상위 1%)가 갖는 삶의 자세이다.
(디모데전서 4:4-5)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