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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문학n천국 2024. 11. 16. 11:49

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한 문장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Live with one sentence a day) }

(50)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One who wants to wear the crown, bears the crown)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8-2000) 시인은 그의 시(詩) < 자화상 > 에서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 이라고 했다. 젊은 시절의 방황과 시련이 자신을 키웠다는 뜻이다. 그렇다. 시련은 우리를 성장시켜 세상의 언저리(edge)를 떠나 중심에 서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영광으로 가는 간이역(簡易驛)인 것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석탄과 다이아몬드의 공통점은 탄소로 된 결정체라는 것이다. 탄소의 대부분은 새까만 석탄으로 남는다. 하지만 엄청난 고압과 고열을 견딘 탄소는 찬란한 빛을 내는 다이아몬드가 된다.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해서는 지하 약 140~200km의 깊이에서 탄소 원자들이 1500℃ 정도의 고온과 1㎠당 65,000kg의 고압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와 1500도의 고열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석탄은 빛나는 보석 다이아몬드로 탄생한다.

만약 오늘 우리의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주변 상황들로 인해 힘들고 괴롭다면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면 좋겠다. 그래야 나의 인생 좌표(座標, beacon)가 흔들리지 않는다.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의 명언 가운데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One who wants to wear the crown, bears the crown)" 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셰익스피어가 권력에 집착하는 헨리 4세 왕을 꼬집고자 그의 희곡에서 한 말이다. 왕관을 쓴 자는 명예와 권력을 지녔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는 의미이다.

조선의 임금들은 일식(日蝕)이 일어나면 "어둠이 광명을 가렸다"고 해서 자신의 부덕함을 공개적으로 사죄했고,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하늘이 내린 꾸짖음이라고 여겨 스스로를 책망했다고 한다.

가뭄이 들었을 때 세종대왕은 "이는 형벌이 바르게 집행되지 못해 죄 있는 자가 잘못하여 용서를 받고 무고한 자가 도리어 화를 입어서일 것이다. 이는 모두 과인의 부덕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내가 반성하며 스스로 자책하길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영조대왕은 천둥이 쳤다는 보고를 받고서 "하늘이 경고하는 뜻을 보이시니 어찌하여 발생한 것인가. 그 이유를 따져 보니 잘못이 과인에게 있다. 나 자신을 수양하는 일에 미진한 점은 없었는가, 마음을 비우고 간언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부족한 점은 없었는가" 하며 스스로 반성하는 내용의 교서를 내렸다고 한다.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브링클리(David Brinkley,1920- 2003)는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은 가끔 빵이 필요한 우리에게 벽돌을 주신다. 어떤 사람은 원망하면서 그 벽돌을 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벽돌을 주춧돌로 삼아 멋진 집을 만든다.”

그렇다. 나쁜 상황 때문에 망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잘못된 대응으로 망하는 사람은 많다. 고난 앞에 나의 태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고난과 시련 앞에서 가장 좋은 대응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구약성경의 여덟 번째 책인 < 룻기 >는 한 유대인 가정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사사시대에 유대 땅에 큰 흉년이 찾아왔다. 이 흉년을 피해 엘리멜렉의 가정이 유대에서 모압 땅으로 이주한다. 그런데 채 십 년이 지나지 않아 남편과 두 아들이 모두 죽고 만다. 이제 남은 건 나오미와 두 며느리뿐이다. 그래서 <룻기>는 뜻하지 않게 세 과부의 이야기다.

(룻기 1:3-5)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개인적인 견해는 나오미 가정의 모압 이주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만약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면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죽어서 사라지지 않게 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우연이라기 보다는 징계의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상식으로 보면 그들은 환경이 어려워졌다고 불신앙의 땅으로 들어간 것이다. 물론 사고나 병으로 죽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신다. 곧 나오미와 며느리 룻이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와 위대한 가문을 세우는 이야기다. 끊어질 듯 한 가문을 다시 잇게 하셨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당시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유대인이었던 보아스와 재혼시킨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오벳이 태어나는데 오벳은 다윗왕의 조부가 된다. 결국 나오미는 다윗왕의 증조모가 된다. 유대 전통에서는 미망인의 첫 아들을 아들없이 죽은 형제의 족보에 올려주기 때문이다. 계대결혼법(繼代結婚法).혹은 형사취수(兄死娶嫂) 제도라 한다.

(룻기 4: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신명기 25:5-6)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이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오늘의 무게를 견뎌내는 자라야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나오미의 가정처럼 고난 앞에서 회피하는 것은 정답일 수 없다고 본다. 무책임한 말 같지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서정주 시인의 고백처럼 시련을 나의 성장동력으로 여기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오늘의 무게를 잘 견뎌내서 승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