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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문학n천국 2025. 1. 4. 18:45

김상용목사의 인생에세이
{ 한 문장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Live with one sentence a day) }

(56)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You cannot step twice into the same rivers)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B.C.535~475년)가 남겼다는 유명한 말이다. 어제 발을 담근 강물과 오늘 발을 담그고 있는 강물은 같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미 어제의 그 강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뜻이다.

어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시간 낭비하지 마라. 네가 숨이 멎어 무덤 속에 들어가거든 그때 가서 실컷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왜 지금 삶을 제쳐 두고 죽음에 신경을 쓰는가. 일어날 것은 어차피 일어나기 마련이다."

다시말해 스승의 말은 오늘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때문에 지금의 시간을 허비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쓰레기 통에서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디오게네스(Diogenēs, B.C. 412-323)이다. 어느 날 그에게 손님이 찾아왔는데 알렉산더(Alexander, B.C. 356-323) 대왕이었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둥그런 나무통 안에 앉아 일광욕(日光浴)을 즐기고 있었다. 알렉산더 왕이 물었다.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대도 알겠지만 나는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다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대답했다.
“아, 왕이시여, 그러시다면 제발 폐하의 그림자를 치워주십시오. 폐하께서는 지금 해를 가리고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을 침해당하지 않기를 디오게네스는 원했던 것이다. 거지처럼 살았던 철학자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햇빛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왕이라해도 햇빛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는 뜻이다.

< 지금 여기에 (Be Here Now) >라는 책의 저자인 람 다스(Ram Dass, 1931-2019)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항상 일어날 일을 일어나게 두지 못하고, 지나간 일을 지나간 대로 두지 못한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큰 수수께끼다. 기쁨과 성취감 그리고 지혜를 얻는 열쇠는 바로 과거와 미래에 대한 많은 생각을 멈추고 매일 자신에게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 현명한 사람은 시간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스스로 독려하는(encourage) 사람이다. 반대로 자신을 망치는 가장 쉬운 길은 게으름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방탕하게 허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크게 망가뜨리는 일이다.

내가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하는 생각이다. 무엇하나 이루어 놓은 게 없는데 벌써 육십여 년 가까이 살았다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두려워진다. 이렇게 빠른 것이 세월이라면 머지않아 유언할 때가 오겠다는 생각이다. 슬픈 일이다. 1968년~2025년. 나도 곧 역사 속의 인물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주님을 위해 한 글자, 한 줄이라도 더 써놓고 가야할텐데 하는 마음이 든다.

불교에서 유래된 말 중에 ‘찰나(刹那, moment)’가 있다. 지금의 시간으로 따지면 75분의 1초이다. 1초 안에 75 찰나가 들어있다는 것인데, 우리가 보는 TV의 영상이 1초당 30장의 필름이 돌아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추측할 수 있다. 우리네 인생도 전체를 놓고 보면 오늘 하루는 찰나일 뿐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조신의 꿈>이란 얘기가 있다. 신라 때의 승려 조신이 사찰에 온 태수의 딸에게 반해 그녀와 자식까지 두었다. 40여 년을 살다가 자식이 죽는 등 일을 겪으며 뒤늦게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법당에서 종을 한번 울리는 사이에 졸면서 꾼 꿈이었다는 것이다. 그 짧은 사이에 꿈을 통해 인생 40년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렇다. 짧은 인생을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 너무 쉼에 집착하는 삶은 지양해야 한다. 다시말해 '빈둥빈둥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처럼 살아선 안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이발을 하기 위해 이발소를 찾았다. 그런데 문 앞에 이런 팻말이 있었다. <오늘은 현금, 내일은 공짜>. 공짜로 이발을 하고 싶었던 그는 하루를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다음날이 되었다. 일찌감치 이발소를 찾아갔더니 역시 그 팻말이 있었다. <오늘은 현금, 내일은 공짜>, 그래서 또 다음날에 가기로 했다. 다음날도 여전히 같은 팻말이 있었다. 그 사람은 투덜거리면서 <또 내일이란 말이지>라며 돌아서고 말았다.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빈둥빈둥 바이러스’라고 한다.

철학자 소포클래스(Sophoklē̃s, B.C.497-406)는 말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

구약성경의 인물 가운데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할 때 이렇게 말했다.

(창세기 47:8-9)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남들의 평가를 떠나 스스로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아왔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장 열심히 살았던 인물이 야곱이기도 하다. 무일푼이던 그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이십 년을 밤낮으로 일했다. 훗날 그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된다.

(창세기 31:38-40)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성공하기 위함이 아니다. 물론 성공도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이 우리에게 선물이고 은혜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오늘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26, 30)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