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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가이사(Caesar)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35 [35] 가이사(Caesar)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유대교(Judaism)는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의 민족 종교이다. 이 유대교 안에도 여러 분파가 있었다. 분파가 나누어진 시기는 신구약 중간 시대, 곧 B.C.4세기 경부터이다. 먼저 사두개파(Sadducees)는 제사장 사독의 후손들로 제사장 계급을 독점했다. 사두개파는 소수의 분파이지만 재산이 많았고, 선도적인 입장에 있었다. 사두개파는 정치적 색채가 강했고, 바리새파와는 대립했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한 뒤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두개파는 소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고, 부활도 천사도 마귀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았다. 바리..

카테고리 없음 2022.04.23

신앙에세이 '삭개오(Zacchaeus)의 복'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34 [34] 삭개오(Zacchaeus)의 복 여리고성은 가나안 정복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우렁찬 함성소리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여호수아는 무너진 폐허 위에서 훗날 이 여리고성을 재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수6: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그런데 500년 쯤 흘러 북이스라엘 아합왕 때 여리고성을 재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벧엘 사람 히엘에 의해서이다. 물론 당시 통치자인 아합왕의 승인하에 재건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

카테고리 없음 2022.04.22

신앙에세이 '인생의 흉년(lean year)은 없다'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33 [33] 인생의 흉년(lean year)은 없다 아브라함 때에 큰 흉년(lean year)이 왔다. 학자들에 의하면 그 시기는 B.C.2090년 경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삭의 때에도 큰 흉년(凶年)이 찾아왔는데 그 시기는 B.C.1990년 경이었다고 한다. 다시말해 100년 만에 다시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임했던 것이다. 창42:5절에 의하면 이같은 큰 흉년은 야곱의 시대에도 다시 찾아왔다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 가나안 땅에서 한 번씩은 큰 흉년을 경험한 것이 된다. 농경생활과 유목생활에 의존하던 당시에 큰 흉년은 생계에 직접적으로 큰 타격이 되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큰 흉년 곧 기근이 오..

카테고리 없음 2022.04.20

신앙에세이 '복음은 축복이다'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32 [32] 복음은 축복이다 에티오피아는 세계에서 기독교를 가장 먼저 국교로 인정한 나라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뿌리가 스바(Sheba)여왕과 솔로몬왕 사이에서 태어난 메네릭 1세라 믿고 있다. 곧 자신들이 솔로몬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고대 역사문서에 스바 여왕의 이름은 마케다이고, 마케다와 솔로몬왕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메네릭 1세이고, 그가 에디오피아를 건국했다고 한다. 스바(Sheba)여왕에 대한 기록은 구약성경, 신약 성경, 코란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역사서인 아베산(Habeshan), 이렇게 네 개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찾은 시기는 B.C. 10세기 경이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왕을 찾아 온..

카테고리 없음 2022.04.18

신앙에세이 '쳇바퀴 인생 38년'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31 [31] 쳇바퀴 인생 38년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 입구인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다. 애굽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는 이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마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꺼내 가나안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이만큼의 기간을 염두에 두셨던 것 같다. 이 기간은 어린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행보를 고려하여 최대한 느슨하게 행군했을 때 소요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기간을 좀 더 들여다 보면 출애굽하여 호렙산까지 소요된 시간은 두 달 여 남짓이었다. 그리고 이 호렙산에서 일년 가까이 머물렀다. 백성들은 이곳에서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받았다. 그리고 성막을 만들었다. 다시말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카테고리 없음 2022.04.15

신앙에세이 '기억되는 이름'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30 [30] 기억되는 이름 하나님께서 세상에 세우신 첫 가정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다. 첫 가정이기에 의미와 상징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요즘 젊은이들 말로 아담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애정하시는(adore, love)' 가정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범죄로 이들은 결국 자기들의 고향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렇게 첫 가정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이 만드신 낙원과 인간 세계는 단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쫓겨난 가정에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을 주셨고 가인은 자라서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양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리고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 그런데 문제는 하..

카테고리 없음 2022.04.13

신앙에세이 '부활을 꿈꾸라'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29 [29] 부활을 꿈꾸라 나의 소싯적 기억에 죽은 사람의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노래를 '상여소리'라고 했는데 그 가사의 내용은 간단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라고 앞에서 종을 치는 사람이 선창하면 상여꾼들이 '어어야~ 이이제~' 라고 불렀다. 일종의 장송곡(requiem)이다. 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교회 밖에 있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증거였다. 성도들의 장례식에는 찬송가를 불렀기 때문이다. 한 번 죽으면 되돌릴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곧 천국과 지옥이다. 구약성경에서 죽은 자가 살아난 경우는 두 번인데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린..

카테고리 없음 2022.04.11

신앙에세이 '말씀으로 이끌림 받기'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28 [28] 말씀으로 이끌림 받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정착했던 기간은 430년이다. 창46:27절에 의하면 야곱의 가족 70명으로 시작한 애굽에서의 이주 생활은 430년이 지난 출애굽 당시 남자 성인만 60만명이 되었다.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족히 200만 명을 넘겼을 것이다. 출애굽은 민족 간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계약 기간 만료로 출애굽을 한 게 아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선포하면서 시작된 사건이었다. 애굽 바로왕의 저항은 당연한 것이었다. 200만명이나 되는 노예를 풀어 주면 누가 힘든 일을 대신할 것인가? 이 때문에 바로왕은 출애굽을 저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열 가지 재앙을 겪으면서 애굽의 ..

카테고리 없음 2022.04.08

신앙에세이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 극복'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27 [27]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 극복 조선 제 7대 왕인 세조 임금은 5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역사 드라마를 보면 세조가 피부병 때문에 온천욕을 즐긴 것으로 묘사되는데 학자들에 의하면 세조 임금의 피부병은 나병, 곧 문둥병이었다고 한다. 세조 임금은 자기에게 나타난 문둥병이 조카인 단종 임금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簒奪,Usurpation)한 죄 때문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렇게 나병(한센병,문둥병)은 과거에는 치료가 어려워 하늘이 내린 병, 곧 천형병(天刑病)이라 불렸다. 나병(leprosy)은 참 고독하고 잔인한 질병이다. 암 환자는 가족의 돌봄을 받으며 함께 지낼 수 있지만 나병은 감염 우려때문에 반드시 격리되어 지내야 했..

카테고리 없음 2022.04.06

신앙에세이 '혁신(革新,innovation)하라'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26 [26] 혁신(革新,innovation)하라 죽음을 늘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보통은 부모님이나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보면서 그때서야 생각하게 되는 단어가 죽음이 아닐까? 흔히 말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 뒷면이다. 삶은 과정이고 죽음은 결말이다. 인간이 무능한 것은 자기 삶의 결말을 자기가 주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운동 선수들의 유니폼 백넘버(back number)처럼 자기에게 남은 날을 큼지막한 숫자로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시간을 허투루 쓰진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날을 알 수 없기에 삶에 팽팽한 긴장감이 있는 것이다. 어느날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을 면담하기..

카테고리 없음 2022.04.04